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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에 해당되는 글 156건

  1. 2014.03.06 달을 녹이네
  2. 2014.02.18 조직생활 서바이벌 가이드 (1)
  3. 2014.02.06 해고단상
  4. 2014.01.21 블로그의 가치 (2)
  5. 2014.01.20 슬럼프 (2)
  6. 2014.01.06 Goodbye 2013
  7. 2013.12.18 아버지생각 3
  8. 2013.12.15 안녕들하십니까
  9. 2013.12.03 아버지 이야기 한번 더
  10. 2013.11.18 아버지 생각
2014.03.06 10:39 Scrap








좋아서 하는 밴드 - 달을 녹이네.


그러고보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늘 겨울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세상 가득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도, 추운 겨울 아침 쨍하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 마시는 것도, 겨울밤 숨을 쉴 때 하얀 입김이 어리는 것도, 호호 불어가며 오뎅이니 붕어빵을 먹는 것도 엄청 좋아한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스웨터니 목도리가 좋아진다. 옆에 있는 단단한 사람에게 얼굴을 파묻고 싶어진다. 생일이니 크리스마스니 설날이니, 송년회며 신년회까지 들뜨는 이벤트는 내게 늘 겨울이었다.


자전거 타고 퇴근하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문득 올해는 겨울없이 한해를 끝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차가운 공기, 따뜻하던 겨울날들이 그립다. 






posted by moment210
2014.02.18 10:00 분류없음

어느덧 사회생활 7년차다 .  SKT  3년 반,  MBA 2년 ,   징가 이제 반년 , 인턴생활 여기저기 한거 긁어모으면 1년 정도 될테이니  MBA  빼고도 족히 5년은 된다. 내가 SKT  를 떠난다 모두 놀랐었는데 , 숨어서 준비했고 원체 안 어울리는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러고보면 늘 내가 있던 조직을 좋아했다. 


늘 운이 좋았다 .  SKT  에서 한 기프티콘과 모바일 티머니, 둘다 SKT  가 낳을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이라고 생각했고 징가의 Words With Friends 도 마찬가지다. 레이오프 피바람이 불 때도 좋은 팀에 있어서 타격이 적었다 .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구가 떠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스튜디오는 10% 정도만이 떠났고 나름 납득할 만한 의사결정이었다. 늘 그렇게 '좋은 '팀에 있었던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 라고 되뇌이면서 며칠더 생각해보니, 상당부분은 내가 만든 운이었다. 망해가는 게임팀 배치 받아서 그 팀 전체와 함께 잘려버린 가까운 친구를 보면서 분통이 터졌다. 왜 니 밥그릇 니가 못챙기니. 차마 말은 못해놓고 여기다가 잔소리를 퍼붓는다.


가까운 친구라 차마 조언하지 못했던 조직생활 서바이벌 가이드.


1. 팀을 고르는데 신중하라


나는 직장을 고르는 프레임을 1) 업무 2) 문화 3) 보상으로 그린다.  1) 하고 있는 인더스트리/펑션, daily task 가 좋고 2)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며 3) 금전적/사회적 인정 보상이 좋으면 그 직장은 최고다. 한국에서는 세개 중 두개가 괜찮으면 '닥치고 그냥 다녀라' 는 조언을 들었었다. 


문제는, 회사를 선택할 때 3 번은 알지만 1번과 2 번은 상당부분 Micro-Environment  에 의해 결정된다는 거다. 큰 회사일 경우에는 더더욱. 업무부터:  SKT  의 예를 들어보자. 내가 기프티콘 팀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가서  Product manager 역할을 하게 될지-얼마나 권한이 주어질지, 외부 구매 대행이나 하게 될 지-모른다 . 다음, 문화는 또 어떤가: 내 매니저가 어떤 진상일지 팀에 갈때까지 모르는거다. 업무도 그렇지만, 문화는 정말 팀 사람들이라는 Micro Environment  가 결정한다 . 그리고 같은 회사여도 이 분위기가 천차만별일 때가 많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2/3 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며, 만족도를 결정하는 것이 업무와 문화인데 이를 고르는데 신중하지 않은 것이 난 이해가 안간다. 영어표현 중에, "니 숙제를 먼저 하라" 는 것이 있다. 조사를 하고, 진상매니저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실제하는 일이 무언지 그 팀과 이야기해보고, "내 숙제를 한 이후에" 신중히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연히 가장 중요하다.



2. 본인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려라-


골랐으면, 알려야한다. 먼저 팀배치. 신입사원에게 주어지는 팀배치 면담은 그야말로 기회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누군가 먼저 물어봐줄' 기회는 사실 사회생활에서 매우 드물다. 그게 주어지는게 신입사원 배치면담, 그다음은 연말 리뷰. 먼저 말꺼내는게 어려운 사람이라면 이 기회를 놓쳐서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나는 징가에서 팀배치할때 내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내 숙제를 한 후에 )  원하는게 무엇이지 정리했다.  난 모바일에 가고 싶었다. 상위 5개 가고 싶은 팀을 적을때 모바일팀만 적었다. 게임팀 말고 퍼블리싱(애플 앱스토어/구글앱스토어 앱 피처링 및 광고 집행) 하는 팀에도 관심이 있어 그것까지 총 5개를 적었다.  HR 팀에서 요구한 것은 팀이름 뿐이었으나 나는 이메일에 내가 왜 이팀을 원하는지 스토리를 적었다. 나는 모바일 배경에서 왔고, 모바일에 관심이 많으며, 게임팀 경험을 하고 싶은지 장기적으로 관심있는 퍼블리싱에 바로 가고 싶은지 고민이다. 둘다 좋으나 웹게임에는 절대가고 싶지 않다. -  HR 에서 요구하지 않은 가기 싫은 곳과 이유까지 명확히 명시하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내가 웹게임에 갈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이번에 잘린 내 가까운 친구는, 팀별 소개시 느낌이 좋았던 곳 5 팀을 적었고, '스토리가 없자'  HR  팀에서는 결국 그의 5순위였던 팀을 주었다. 나는 그곳이 싫다고 펄쩍 뛰는데 이 친구는 어딜 가도 만족할 것 같으니 그 곳을 줬던 거다. 옆에 붙어서 잔소리를 해야했는데, 그 때 얘를 뜯어말리지 않고, 결국 그가 잘린것이 약간은 내 책임 같아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렇다면 팀배치후 원하지 않는 업무를 맡게 되었을 경우는? 알려야한다. "한국은 그런 분위기 아닌데요." 웃기지말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한국 대기업 다녔거든. 말해야한다. 말해야안다. 잘만 말하면 된다. 이를테면 Words With Friends  팀에 온후  Words  는 아이폰/안드로이드/웹 모두에 게임이 있는데 웹 담당 사람이 자꾸 떠나는 바람에 결국 내게 웹게임 일이 오게 되었다. 나는 하기 싫다. 그렇다면, 말해야한다. 나는 우리 매니저에게 "너의 상황 잘 이해한다. 지금 이걸 맡을 사람이 나밖에 없다. 우리팀이 곤경에 처했을 경우 어려움을 나누는 건 당연하고 내가 하겠다. 그러나 나의 커리어골하고 웹게임 매니저하고는 많이 다르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이걸 맡을 사람이 오면 떠나고 싶다. 두달후에는 다시 모바일로 돌아갈 수 있게 사람을 구해달라."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왜 이걸 하기 싫은지, 스토리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에게 명확한 액션아이템을 주어야한다. 한달마다 상기시킬 예정이다. 내가 지금 굉장한 희생을 하고 있다고. 매니저에게 못다한 과제로 항상 머릿속에 남아있어야 차차 구해준다. 내가 팀을 위해 희생하지머, 라고 누구에게나 별로인 업무를 하고 있으면 알아서 보상해주는게 아니다. 너는 그런걸 맡겨도 군소리 없는 편한 인간이 될 뿐이다. 이건 한국 조직은 더 심하다. 희생한다고 좋은게 아니다.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한다.



3. 그리고 본인이 하는 일을 사랑할 것.


쥴리 앤드류스가 부른 노래중에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라는 노래가 있다. (오타아님) 

"모든 일에는 어딘가 약간의 재미있는 측면이 있기 나름이야. 청소는 창문이 첨첨 투명해지고, 빨래는 좋은 냄새가 나고. 그 재미를 착! 하고 잡아서 즐겁게 일하는게 필요해. 자 여기 일을 즐겁게 하기 위한 주문이 있어 supercalifragilisticexpialidocious!"  라는 가사다. 


난  어지간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즐겁다. 모든일에는 그 나름의 즐거운 측면이 있다. 웹 일을 처음 해봐서 즐겁고, 모르는게 많다. 아 모바일이랑 이런게 다르군, 하면서 맨날 배운다. 웹 운영경험이 많지 않은 내게 두세달 정도 웹 일을 하는 건 딱 좋은 경험이고 기가 막히게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다른일로 갔어도 난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어딘가 빛나는 매력, 그만의 별이 있다고 믿는데 일도 그렇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성과도 난다. 


자, 1-2번은 내가 할 수 잇는 만큼 상황을 바꾸는 거다. 3번은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했으면, 주어진 상황을 즐기자는 거다. 

posted by moment210
2014.02.06 11:50 분류없음

징가에서 지난 목요일 ( 1/30) 15% 인력을 해고했다. 운영하는 게임 대비 직원수가 너무 많다는 비판이 예전부터 있었고, 벌써 세번째 대대적인 레이오프다.

 

나는 처음 겪는다. 우리팀은 그나마 타격이 적은 편이었는데도 내 옆에 앉는 친구가 떠났고 올해 채용에서 MIT MBA 에서 세명이 왔는데 그중 두명이 잘려나가고 나만 남았다.(한명은 두달후 떠나는 조건) 표정관리가 잘 안됐다. 내 옆에 앉던 J는 보상금을 잘 받았다며 웃고 있다 나를 보고 "야야야 왜그래 슬픈 표정짓지마" 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매우 슬펐는데, 얼굴에 드러나 보였나 싶어 뜨끔했다. J가 잘됐다며 신난 얼굴을 짓는 건 "척" 일거란 생각을 했다. 자존심 센 친구가, 자존심에 상처를 안 받았을 리 없고 그래서 "아하하 잘됐다"라는 표정을 일부러 지은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착잡했다.

 

처음 겪은 대대적인 레이오프. 몇가지 단상.

 

 

1.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찬성한다.


10% 레이오프는 사실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도와준다. 회사전체 15%라는 해고 기준이 떨어졌을 때, 조직마다 다른 해고기준이 떨어진다. 핵심팀이 아닌 써포팅 조직들 - 이를테면 중앙관리 조직(인사재무 등), 글로벌 담당 조직, 광고, 퍼블리싱 등- 에게는 50% 해고가 떨어지고 우리처럼 비교적 잘나가는 게임에는 5~10% 정도 할당량이 떨어진다.


5~10% 해고라면 약간의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그건 조직에도,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J만 해도, 영민한 친구이나 뺀질거림의 최고봉을 달리곤 했었다. 징가에 질릴 때로 질려있는 듯했는데 나는 그게 많이 신경이 쓰였다. " J,  나는 너를 좋아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이러는거 너한테 안좋아. 내가 같은 상황에 있어봐서 아는데, 일 안하고 쉽게 돈받는거, 이렇게 뺀질대는거 버릇돼. 회사가 싫으면 투덜댈 게 아니라 상황을 바꾸려 노력해야하고,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판단이 들면 차라리 빨리 떠나." 나는 정말 그가 걱정됐다.  J 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러나 말이 쉽지 있는 직업을 잘라내고 떠나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팀에서 나간 세명 - 뺀질거리던 J , 게으르던 L , 그리고 일을 따라올 수 없었던  R- 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직장이 이곳이었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직장에서 지긋지긋하게 일못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너무 치이곤 했다. J 같은 사람 동료들은 의욕이 없어진다. "아 저렇게 회사다녀도 되는데, 열심히 하는 내가 바보인건가" 기운이 빠진다. 의욕상실은 전염된다.  일 못하는 사람은 본인도 힘들다. 그뿐인가, 동료는 같은 일을 스무번씩 설명하면서 진이 빠진다. 심지어 가끔은 사고친 것도 메꿔주어야한다.

 

어딘가 내가 필요한 곳이 있는데, 바보취급 받으면서 현재 직장에 머무르는건 서로에게 지치고 해가된다. 회사도, 직원도, 자신에게 가장 맞는 곳을 계속 찾아가는건 서로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2.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인력해고를 자유화하는게 맞다면, 철도 노동자들 또한 해고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하는 건가. 노동조합의 설립을 막아야 하는 건가. 자유화, 자유화, 자유화가 답인데?!

 

해고문제가 복잡해지는 건 한 인간의 삶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징가의 해고문제가 비교적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건 직원 평균연령 28세의 젊은 회사이고, 대부분 딸린 가족 없이 싱글이며, 평균 연봉 $100 K  이상은 되는 좋은 직장이다보니 대부분 능력있는 친구들이고 다음 직업을 구하는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들 고급인력은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 와는 다르다.

 

한국과 미국의 직장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한다. 미국은 직장을 바꾸면서 승진하는 문화가 일반적인 곳이다. 경력직을 항상 채용하고 있고, (일자리가 있고) 해고되거나 관둔 것이 치명적인 결점으로 비춰지지 않으며, 해고 되었을 경우 직원에 대한 보상시스템이 갖춰져있다. 이건 복지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이다.

 

고용유연화를 하고 싶으면 그에 맞추어진 사회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한다. 당장 잘려도 몇달 직업을 찾을만한 써포트가 주어지고, 그들이 구할 수 있을만한 일자리가 있어야한다. 평생고용제를 기반으로 복지시스템이 지어진 한국에서 정리해고는 치명적이다. 시스템과 실제 해고는 닭과 달걀의 문제일 수 있다.

 

 

3.  Wake up Call


졸고 있다가 얼굴에 찬물이 끼얹혀진 느낌이다. 나도 일을 잘해야 살아남겟구나!

* 타이밍 기가 막힌 레이오프 전날 (1/29) 의 일기*

"요즘 일을 굉장히 못해서 회사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 예전회사 몰래 숨어서 MBA 준비할때 같이 일하던 매니저님한테 창피하던 기억이 난다. 뺀질거렸고, 일을 못했고, 원래 이렇게 뺀질대는 인간이 아닌데 나를 완전 바보로 생각하겠군 싶어서 괴로웠다. 요즘 그꼴이다.

12월 회사 일이 별로 없을 때 뉴스페퍼민트에 제대로 버닝했고 그 다음부터 일하는 모드가 안돌아오고 있다. 거의 한달 째 계속되는 슬럼프. 기절하겠네. 영어가 안되고, 머리가 안돌아가고,(생각하기가 귀찮고) 의욕이 없는 삼중고로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아 미치겠네. 정신차려!"

 

솔직히 내가 일 제일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일 못하는 애들이 왕창 잘렸고 나는 내 에너지의 50% 도 활용 안하고 있었다. 헉, 갑자기 부담이 되서 소화가 안된다. 다시 매일같이 숨어서 야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이제 사회생활 7년차다. 서서히 커리어 '중반기' 를 고민할 때이다. 야근을 하면서, 무조건 주어지는 일을 잘하려 분투할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친구들과 미국회사에서 PM 으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관심있는 것에 포커스 하고 싶다.  International Business Dev  과 연관된  PM  일, 그러니까 아시아를 공략하는 상품의  PM,  아시아 시장 비즈뎁, 혹은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진출하는 상품의  PM 겸 비즈뎁, 같은 곳으로 가고 싶다. 게임 비지니스도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기전부터 그게 고민이었음) 저널리즘이나 컨슈머 인터넷 인더스트리로 가고 싶다. 

J 에게 잔소리할 게 아니라, 나도 여기서 확실히 잘하던지, 빨리 더 잘 할 수 있는 곳으로 나가 내갈길 찾던지, 움직여야한다. 이번 해고는 심각한  wake up call 이다.

 


4. 어쨌든 씁쓸하다.


어쨌든 착잡하다.  J 가 보고 싶고,  K 가 안쓰럽고 걱정된다. 며칠이 지나자 아무렇지 않게 회사가 돌아가는게 섭섭하다. (두명의 일을 떠맡은 나를 비롯해 모두 바빠지긴 했다.)   

회사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회사에 대한 애정도는 떨어졌다. 그렇게 잔인하고 차갑게 굴수도 있구나. 회사는 회사일 뿐이구나. 회사나 상품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내가 할일을 못하는게 싫으니 똑바로 잘하려 노력은 하겠지만, 일은 일일 뿐이다.
예전에는 '내새끼' 티캐시가 욕을 먹으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SKT 라는 회사에도 그런 애정이 있었다. 지금도 텔레콤이 욕먹는 게시물은 클릭하기가 싫다. 멀 잘못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애정이 있다. 이곳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posted by moment210
2014.01.21 09:34 분류없음

워드프레스의 Matt Mullenweg  는 블로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1) 생각을 정리할 기회와 2)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를 돌이켜 볼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그랬다. (http://ma.tt/2014/01/intrinsic-blogging/) 존경하는 타자에게 글을 검사받는다고 생각하며 쓰라고.


지난 10년간 웹상 어딘가에 늘 끄적이고 있었지만 여기로 이사온 후 3년간 글이 꽤 쌓였다. 또 몇시간을 삼년간의 나를 돌아보며 보냈다. 비공개 글이 절반 정도인데 몇개는 공개 풀었다. 


HBR  에  emotional agility 이란 글이 올라왔었는데, 뉴스페퍼민트에 쓰다말고 잘 요약이 안돼 때려친 글을 누군가 잘 정리해놓았다. 1) 자신의 감정패턴을 인지하고 2) 명시화하고 3) 받아들인 후에 4) 가치에 따라 행동하라고 한다. 글을 쓰다보면 차분히 1)~3) 나를 관찰하게 된다. 미래의 내가 글을 읽고 아 무슨 상황이었지 라고 기억을 하려면 꽤 자세히 써야한다. 명시화 하다보면, 아 이거였군, 이라고 내 감정과 상태가 정리가 되면서, 어리석은 집착들이 털어진다. 

http://h3imdallr.wordpress.com/2013/12/09/20131209a/ 


앞으로도 이주에 글 하나는 쓰자. 생각하며, 정리하며, 나를 돌아보며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posted by moment210
2014.01.20 05:53 분류없음

신나게 일벌이다가 슬럼프가 오니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을 세번쯤 썼다 지웠다. 슬럼프가 있으면 안되게 일을 벌였는데 어느 순간 감당이 안된다. 자라지도 않고 맨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나지만 그래도 이만큼 경험했으면 응석은 졸업하자.  내가 벌인 일은 내가 책임져야지. 단단하고 강한 심지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이 부담되니 회피하는 마음으로 옛날 사진과 일기를 보게 된다. 

문득 2009년 따스하던 봄날의 화개장터가 떠올랐다. 참게탕은 기대대로 맛있었고, 별생각없이 집어먹은 빙어튀김이 너무 맛있었다. 그 무렵 지쳐있었는데 한가로운 시골 동네의 따스한 햇살이 큰 위안이 되었다. 정겨운 사투리를 들으며, 소박한 한국 음식 먹고, 목적없이 할랑거리고싶다. 아- 빙어튀김 먹고 싶다.


내 마음의 여유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앉아있는 집앞까페에는 해가 가득 든다. 겨울에도 20도까지 올라가는 샌프란시스코는 따스하다. 자 이제 불평그만.





=====

페북에 글을 썼다 지웠다. 응석부리지 말자, 강한 심지가 있는 사람이 되자, 라고 내게 다짐하려 혼잣말 한건데 페북이라는 플랫폼이 "내말좀 들어주세요" 라고 세상에 소리치는 플랫폼이라는 것을 답글이 달리고 라이크가 쏟아진 후에야 깨달았다. 그야말로 제대로 응석을 부려서 다들 화이팅화이팅 하니 부담된다. 페이스북은 이제 무얼하기도 부담스러운 플랫폼이 되었다. 




posted by moment210
2014.01.06 19:06 분류없음

내가 어이가 없어 웃음밖에 안나온다. 요즘 나는 우르릉꽈당쾅쾅쾅이다. 혼자 신나서 팔짝대다 지하철에서 우르릉쾅쾅 구르며 넘어지는 아이의 이미지랄까. 굉장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사고쳐대는게 장난이 아니다. 아오 진짜 2013년은 꽉차게 살았구나.



2013 년은 정말 열심히 소진한 해다.


일.

- 뉴스페퍼민트를 꾸준히 1년을 했고, 250개 넘는 글을 썼고, 법인화 하고 새 과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계속 다른 걸 배웠다.아주 초기에는 번역과 글쓰기 자체를, 중반에는 저널리즘 인더스트리-각 매체별 특징과 이 동네 돌아가는 생리를 배웠고,  지금은 스타트업이 다음단계로 넘어가려할 때 왜 어려운지를 배우고 있다. 너무 열심히 했고, 너무 많이 배웠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 가을에는 징가에 조인했다. 생각보다 너무 좋았고,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기대치않게 많이 배웠다. '핏'이라는 게 말로만 외치는 구호가 아니다. 나와 같은 가치관 (인생 즐겁게 살자!) 을 가진 '똑똑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자극받는게 좋았다. 

- 봄에는 리쿠르팅을 마무리했다. 정말 가고 싶던 회사에 최선을 다했으나 안됐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비우는 법도 배웠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그다음엔 결과를 받아들이는 거다. 할수 있는 만큼 하면 그래도 뒤끝이 안남는다.

- 지금의 징가에는 매우 만족한다. 많이 배우고 있고.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때는 미국애들이랑 그냥 프로덕트 매니저로 경쟁하면 승승장구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에 진출하는 걸 목표로 하는 미국회사나 실리콘밸리에 진출하고 싶은 아시아 회사 등, 내 백그라운드를 좀더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 원래 international biz dev 에도 관심많았고.  2015 옮기는 목표로 알아볼까.


삶 

- 에너지가 넘치는 브라질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국가다. 콜럼비아도 가서 남미의 '내가 가본 나라' 지도는 거의 칠할 수 있게 되었다. 브라질에서의 한달은 내 남미 사랑을 재확인한 기회였다. 리오가서 몇년 살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 캐러비안해  British Virgin Island 에서 요트를 빌려 보낸 열흘간의 파티는 정말 최고였다. 궁극의 파라다이스 휴가. 이비자에 안가도 이제 여한이 없다. 

- 한국에 두번 다녀왔다. 한국에 가면 좋아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보호받는 느낌이 든다. 따뜻하다. 올해는 유난히 가족들하고 친해졌다. 부모님하고 대화를 많이할 수 있던 여행을 두번이나 했고 (보스턴, 제주도) 동생과 조카와도 친해졌다.

- 보스턴에서 샌프란으로 이사했는데 보스턴도 샌프란도 참 좋다. 내가 너그러워진게 아니라 이젠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잘 알아서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도시로만 옮겨다닌다는 느낌이다. 올해 한달 이상을 '산' 상파울로, 보스턴, 서울, 샌프란, 모두 너무 좋아하는 도시다. 


연애

- 올해는- 특히 최근 몇개월은 난리도 아니었다. 진짜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 이제는 정말 과거의 유물에서 졸업한 것 같다. 정말로. 

- 사람 만나는 것도 경험을 하고 나면 달라진다. 좀더 편해져서 솔직하게 나를 터놀 수 있게 된 건 좋은데, 아직 나를 잘 모르겟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싶으면 내가 또 달라진다. 

 


진짜 열심히 '소진' 한 한해였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신나서 눈 반짝이고 있는 사람이 좋은데, 난 2013년 항상 눈이 반짝이고 있었던 것 같다. 

2014년도 이렇게 소진하게 하소서. 좋아하는 것에 신나서 폴짝대게 하소서.



근데 2013년 막판에 하도 버닝했더니 지금은 다 소진된 느낌이다. 감정적 에너지 바닥. 1월엔 조용히 숨어서 운동이나 하며 좀 채우고..





posted by moment210
2013.12.18 18:59 분류없음

이 대단히 가족적인 비유는 동시에 대단히 신분적인 비유이기도 하다. 이 비유에서 '회초리를 든 어머니'는 항상 궁극적으로 옳다. '회초리를 맞는 자식'은 항상 궁극적으로 틀렸으며, 동시에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존재다



- 철도 민영화 과정에서, '사랑하는 직원들을 회초리를 든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으로 직위해제한다' 라는 발언을 한 여성리더를 비판하는 트윗 중에서.




나는 사춘기 때 주구장창 아버지께 대들었었다. 성격 드센 나는 회초리를 들수록 더 악을 질렀고 존경하던 아버지가 내말을 안듣는게 그렇게 화가났다. 기숙사학교에 가며 대화가 끊겼고,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고, 10년정도 어색했다. 다시 친해지는데 한참이 걸렸다. 또 한 5년정도가 지난 이번 여름 아버지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둘이 저녁데이트를 하자 하셨다. 그리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쏟아내셨는데 본인이 젊었을 때 '생각이 부족해서' 내게 본인 생각을 강요한게 그렇게 마음에 걸렸다 하셧다. 눈이 빨개지셔서 '젊은 혈기에 욱했던 게 미안하다. 내가 어렸다.' 라고 하시는데 나는 목이메여 아무 대답도 못했다.

나는 아직도 그시절 아버지와의 대립이 양방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른으로 인정받아 토론하고 싶었으나 터무니없이 얕았고 아버지는 철없는 자식에게 귀기울이는 척 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어른' 인 이유는 그걸 먼저 인정하신 거다. '더' 잘못한 건 나인데, '회초리를 든 부모' 가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였는지 스스로 인정하신거다. 철없는 나는 아직 한번도 눈 똑바로 쳐다보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먼저 다가와 본인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자식에게 인정하고 사과하실 수 있는 아버지가 나는 참 존경스러웠다. 우리 아버지는 어른이구나. 나는 자식에게 사과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회초리를 든 어머니는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권위주의적 의식이나, 사랑하는 직원들을 회초리로 때려서 훈육하려는 마음가짐이나, 드문 여성리더로서의 가치를 저런식으로 활용하는게 나는 숨이 막힌다. 철도 민영화 반대건과 별개로. 철도 민영화 이슈는 깊이 공부하지 않았고 민영화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므로 일단 노코멘트.

posted by moment210
2013.12.15 20:44 분류없음

안녕들하십니까라고 해서 대자보를 붙이는 운동이 대학가에 불고 있다고 한다. 

http://ppss.kr/archives/15784


'안녕들하십니까'시리즈에서는 '청년' 들의 고민이 느껴진다. 이렇게 혈기 넘치고, 이상적이고, 혼란스럽지만 그래서 조금씩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게 대학생 청년이다. 수없이 돌려보던 '청춘스케치(Reality Bites)'가 생각났다. 언론사 인턴의 현실을 참을 수 없던 위노나 라이더는 "I was really gonna be something by the age of 23" 라고 중얼거린다. 1994년 영화인데,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쉬고 자기의 생각을 하는 '잉여의 시간'에서 세상을 바꿀 놀라운 스타트업이 탄생한다는 이론은 대학생에게도 적용된다. 사회에 나와 일을 하고 대출을 해 집을 사고 부양할 가족이 생기고 바빠지면 이제 이런 고민들은 어린 날의 사치가 된다. 


나는 대학생이 아니다. "I was really gonna be something by the age of 23" 라고 중얼거린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사회생활 시작한지도 6년차다. 저런 청년같은 글은 고무적이고 마음도 밝아지지만 공감은 할 수 없다. 나는 다른 고민을 할 시기다. 나는 이제 대학생 집짓기 자원봉사 같은 가벼운 활동은 싫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작은 활동이 전혀 사회를 바꾸지 못할 거라는 걸 닳고 단 나는 나는 이제 너무 잘 안다. 좀더 근본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 좀더 근본적으로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일을 '똑똑하게' '비지니스 적으로' 하고 싶다. 

posted by moment210
2013.12.03 10:18 분류없음

뉴스페퍼민트 인터뷰 기사에 코멘트를 하고 싶었는데 이 블로그에 6개월 째 적고 있는 '나는 왜 뉴스페퍼민트를 하는가' 에 더해서 적으려고 참았었다. 그러다 그 글은 정리하는데 또 한달은 걸릴 것 같아 이 이야기부터 해본다. 


뉴스페퍼민트 슬로우뉴스 인터뷰 기사

뉴스페퍼민트 인터뷰 기사에 대한 '들풀'님의 감상


효석 선배님이 '집사람이 내 글이 좋다 말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했는데 나는 아버지가 내글이 좋다 말해줄 때 가장 좋았다. 아마도 효석선배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의 appreciation' 과는 다른 맥락일테다. 


우리 아버지는 꽤 멋진 분이다. 이코노미스트 계정을 아버지 걸 쓰고있는데, 내가 대학생 때부터 가끔 줄쳐서 내 책상에 읽어보라는 올려놓은 기사도 안읽어보다가(아버지랑도 안 친했다) 일하고, 유학을 나오면서야 그런 영어글을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께 뉴스페퍼민트 같은 걸 하고 있다고 카카오톡으로 얼핏 말씀드렸을 때도 "오 그러니? 멋지네." 정도로 흘려들으셨을 거다. 이번 여름, 한국에 가족 여행을 가서 제주도에서 아버지께 운전을 배우다 졸려하시길래 "음 아빠 내가 어제 뉴스페퍼민트에 쓴 재밌는 글 이야기 해줄까? " 라고 게이미피케이션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굉장히 흥미로워 하시는 거다. 국제개발의 딜레마며 소셜엔터프리너쉽의 과제며 내가 재밌게 쓴 글 5개쯤 들려드렸더니 아하! 라고 무릎을 치며 열심히 글을 읽기 시작하셨다. 모바일로 찾아서 읽어보시라고 휴대폰에 바로 가기를 깔아드렸는데 영 불편하다 하셔서 메일링을 등록해드렸다. 그때부터 뉴스페퍼민트 기사를 흥미롭게 읽으시면 소감을 몇줄 적어 이메일로 다시 포워딩을 하시곤 한다. 주말에 전화하면 한시간씩 떠들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이 정확히 먼지 모르시던 아버지와 일반적인 사회 주제를 다루는 뉴스페퍼민트를 하면서 토론할 거리, 교류할 거리가 많아졌다.

아버지께 인정을 받는게 기쁘다. 아버지를 지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존경하기 때문이리라. 


대학생 동생은 독서토론회를 하면서 뉴스페퍼민트에 빠졌다. 언어로 인해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는 대중에게 다양한 세상의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노블한 행동이다, 라고 평가해준다. 나야 지식공유가 중요하다는 믿음에서 시작해 사서이고생-_- 을 하고 있지만 동생에게 같은 가치관을 강요하지는 않았는데 지가 먼저 내가 중시하는 것들을 중시해주니 기쁘다. 7살 어린 동생이란 가끔 자식같다. 내 자식같고 거울같은 동생에게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으니 보람이 있다.


아버지와 동생이 가족이어서가 아니라 꽤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에게 인정받는게 중요하다. 딸이어서 누나여서가 아니라 꽤 멋진 '사회의 한사람'으로 나를 평가해주는 게 기쁘다. 말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내가 정성을 바쳐 하고 있는 행동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드러낼 수 있어 좋다. 가끔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나를 먼저 알아봐주기도 한다.

뉴스페퍼민트는 그래서 나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드러내게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 그런데 나는 요즘 시간없어서 또 막글을 쓰고 있다. 아오 죄책감.





posted by moment210
2013.11.18 10:17 분류없음

어릴 때는 존경하는 사람 물어보면 부모님이라고 대답하는 애들이 이해가 안갔다. 부모님은 부족한 모습도 많이 보게 되는데, 존경은 완벽한 사람 - 슈바이처 같은 사람한테나 보내는 아닌가. 그러나 나이들어 부모님과 다시 친해지면서 우리 부모님이 멋진 사람이라는 알게 되었고 (이제와)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 부모님이어서가 아니라 멋진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아버지 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버지 환갑 생신에 전화 한통만 드리고 나니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거기도 못가고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다시 돈버니까, 라면서 우겨서 비싼 선물을 사드리기로 했는데도 마음은 못내 찝찝하다아이에게 비싼 장난감 사주고 일하러 나가는 엄마의 마음이 이런걸까, 싶어졌다.

posted by moment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