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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0 06:04 분류없음

일에 끌려가지 않겠다고 바둥거린지가 일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일에 끌려다니며 살고 있다. 


일 외적으로 딱히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일거다. 결혼도 안했고 가족도 없고 남자친구도 없고 누구를 만나려면 노력을 기울여야하는데 한두번 데이트하다 말고 귀찮아지면 관두고 또 하다말고 하고 있다. 일 외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별로 없다. 뉴스페퍼민트는 관뒀고(남의 글을 옮기는 데 흥미가 떨어졌다) 예전처럼 엄청 열심히 술마시고 클럽다니고 뮤직 페스티벌을 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스페인어를 배운다던가 춤을 배운다던가 신나있는 게 없다. 


일은 잘하고 싶다. 일이 지긋지긋하다고 은퇴하고 싶다고 통장 보며 은퇴연금을 언제 모을 수 있을까 집착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래도 일은 싫다기보다 지친 것에 가깝다. 스트레스 받는 건 그만큼 내가 신경쓰고 잘하고 싶은데 못하는 데서 오는 당혹감이 더 크다. 요즈음은 리더쉽 포지션으로 올라가야되서 나만 일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팀과의 갈등 조율, 윗선 관리, 정치, 팀에 일 잘 시키기 같은게 중요해졌는데 잘 못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잘하게 될 조짐도 안보인다. 열심히 하면 늘기야 하겠지만 영어로 한계가 있고 정치도 정말 못하겠다. 엄청나게 오픈된 기업 문화에서 내가 먼가 못할 때마다 피드백이 쏟아지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 쩔쩔 맸다. 그날의 커디션이 회사 상황에 따라 결정나는 라이프를 보낸 지 꽤 되었다.


내가 무얼 원하는지 명확치 않은 데서 남의 아젠다를 쫓아다니며 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데로 생각하게 된다' 는 말대로 별 생각 없는 일이년을 살면서 직접적인 피드백이 쏟아지는 건 일밖에 없으니까 급급히 일만 보며 살고 있었다. 

내 아젠다에 맞춰서 내게 중요한 일을 벌리고, 바운더리를 세워야한다. 간만에 운동을 가면서 몸매좋고 탄탄한 40대? 아름다운 아줌마를 보면서 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사 디렉터는 별로 내 롤모델이 아닌데, 적당히 성공한 직업을 가지고 (지금이면 충분하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밝게 사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 연애를 하던 가족을 만들던 밝고 힙스터스럽게 살았으면 좋겠다.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리콘밸리의 가치를 훌훌 털어버리고 훌쩍 발리로 떠날 수 있는 그런 힙스터로 살고 싶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에 끌려다니다가 정신차려보니 열심히 바둥대며 살았는데 내가 원하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는 그런 삶 말고. 


그럴려면 일 조금 더 잘하는 거 보다 꾸준히 운동하고 재밌는 일 만들고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다. 내 아젠다에 맞춰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우선시하는 라이프를 살아야지. 올해는 인생의 큰 숙제(그린카드, 운전면허, 사적인 일 한두개) 끝내놓고 춤이나 배우러 다녀야겠다. 행복하게 사는 게 내 인생의 골이라는 걸 잊지말아야지 라고 새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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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7.03.06 10:49 분류없음

한달 늦게 쓰는 생일 일기. 


베를린은 굉장히 좋았다. 춥고, 피곤하고, 얼굴은 다 터버려서 갔다와서 일주일간 고생하고, 어느 역사적인 생일파티처럼 신나게 놀아댄 건 아니었지만 요즈음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서유럽은 엄청 돌아다녔지만 베를린은 처음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친구들이 있다는 독일 역사 박물관을 가서 역사순으로 시대를 밟아갔다. 20세기까지 머 별거 없자나라며 슥슥 지나가다가, 최근 100년에 엄청나게 매료되서 완전 집중해서 보았다. 백년전 경제 불황에서 사회문제가 커지면서 조금씩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 사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인종을 배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고, 나찌의 캐피탈이 되고, 어느 순간 조직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색출해 학살하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되어있다. 르완다 호텔에서도 말을 잃었고 캄보디아 학살 현장에서도 숙연해졌지만 나찌는 엘리트들이 조직적으로 학살의 현장을 만들었다는 데서 다르게 두렵다. 캄보디아는 평민들이 들고 일어나 엘리트에게 분노를 표출했다는 데서 끔찍하지만 (안경을 쓰고 있거나 손에 굳은 살이 없으면 학살했다고) 나찌는 인간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정치인이 효과적으로 군중을 조종했다는 데서 두렵다. (나찌는 민주사회에서 선거로 당선된 정권이다)  처음에는 이거 최근의 트럼프 사태와 비슷하자나, 라고 투덜대다가 이건 비교할 수 없이 심하다는 결론.

권위주위와 계급을 강조하는 묵직하고 압도적인 건축 양식. 그리고 냉전시대로 넘어간다. 개성이라고는 없는 무뚝뚝하고 추레한 회색의 공산시대 건물. 정치 분쟁이 끊이지 않고 불안한 사회에서 계속 서베를린으로 도망쳐 오는 사람들. 억눌린 사회에서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흔적이 사방에 남아있다. 강렬한 벽화, 꿈틀대는 그림들. 이런 사회에서 예술은 더욱 꽃핀다. 테크노 음악이 태어나고 그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시 브란덴부르크 문이 열리고, 서베를린의 부유한 문화가 동베를린에도 스며들고. 흑백필름이 보다보면 북한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베를린은 유럽에서 제일 열린 이민 정책을 피는 '실리콘밸리'가 되었다. 개발자들과의 미팅에서 독일인은 거의 없고 러시아/동유럽계 개발자들이 대부분. 베를린에서 꼭 먹어야할 음식은 터키인의 영향을 받은 커리소시지. 주말에는 큰 아시안 마켓도 열린다. 시리아에서도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았다. 은근히 배타적인 유럽 사회에서 이민자들이 넘어올 수 있는 사회가 되었고, 그렇게 테크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다. 


근교도시, '북쪽의 피렌체'였다는 드레스덴에 갔는데 거기서도 데모 중. 시리아의 난민들을 보호하자는 시위와 시칠리아에서 넘어오려던 난민들을 받지않아 수백명 보트피플이 바다에서 죽어간 사건을 추모하는 전시회가 광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에는 극우시위가 열릴 예정이라고.  


독일의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독일인이 좋아졌다. 독일인이 저지른 악행은 어느 인류사보다도 잘 알려져있는데, 이는 독일인이 자신들의 잘못을 명료하게 정리해논 데서 시작한다. (물론 유태인들의 정치적/재정적 후원도 든든하다) 독일의 기초교육 12년을 받은 사람이라면 유태인수용소 학살의 현장을 세번 이상 방문하게 되어있다는데, 역사를 이토록 정직하게 뒤돌아보고 아주 명확한 언어로 몇명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학살당했는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해놓은 국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한국이 왜 자랑스러운 나라인가 가르치고, 일본 군인이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을 가르치지만 배트남 전쟁에 파견된 우리 군인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가르치지 않지 않나. 역사적으로 항상 옳은 일만 해온 민족은 어디에도 없다. 파쇼 사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르치지 않으면 또 같은 실수를 할 가능성도 높다. 내 잘못을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후대에 가르치는 사회는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잘 정리해놓아 건축이나 예술에서도 두려움과 격동하는 감정이 느껴지는데, 회사에서 일 관련 메세지는 끊임없이 쏟아져서 대답하다 말고 아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 왜 스트레스 받아 쩔쩔대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굉장히 좋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공부하고 싶은 곳에서 공부했고 일하고 싶은데서 일하고 있고 이 먼 곳에 비지니스 클래스를 타고 와 좋은 호텔에 묵고 있다. 게이의 결혼이 합법화되고, 이민 정책에 동의하지 않아 시위하는 것이 허락되고, 무능력한 대통령을 쫓아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감사하고 행복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거 가지고 스트레스 받아 안절부절이라니 안네 프랑크에게 얼굴 들 면목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서 아 내가 선택한게 잘한 건지 모르겠어서 스트레스라니, 이 얼마나 First world problem 인가. 그러니 이보다 열배 스무배 백배는 행복합시다. 


생일은 행복해하면서 조용히 돌아다녔다. 성격이 예전보다 내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워킹 투어를 해서 그룹이랑 있었고 친구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생일이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굳이 친구를 만들지도 않았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보고 느끼고읽고 걸어다니면서 좋았다. 드레스덴에서 엄청 추운데 따뜻하고 달달한 글루스바인을 호호 불어가면서 마시면서  저런 소비에트 시대 건물에 안살아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추워지면 책방가서 책 사진 뒤적거리고 예전 필름보고, 가게들 기웃거리고, 유서깊은 백화점에 들러 내게 선물 하나 사주고, 고르메 음식 모아놓은 푸드 코트에 가서 맥주한잔에 소세지 먹고, 아 취하고 기분좋다, 조금더 안주거리 사와 호텔에 와서 쏟아지는 생일 메시지에 대답하다 잠들었다. 예전에는 생일이면 친구들에 둘러싸여서 사랑받고 있구나 헤헤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는데, 하루에 케익 커팅 서너번 하고 누가 미역국도 끓여주고 그러면 행복해했는데, 이렇게 아무 날도 아닌 척 하는게 이제는 더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지낸 서른두살 생일은 나답지 않지만 이제는 나다운 것 같기도 하다.




+ 사실 H가 생일 전주에 취직겸 못본지 오래된 겸 이래저래 샌프란에 놀러왔었는데 너무 좋았다. 생일 앞뒤에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거기서도 메세지와 전화는 했으므로 괜찮았던 건지도. 예전에는 막 물리적으로 옆에 있어줘야햇는데, 나이드니 다들 바빠서 문자 전화만 해줘도 충분히 행복하다. 또 굳이 전화해주지 않아도 그렇게 재차 확인해주지 않아도 내 사람들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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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6.11.04 14:32 분류없음

잘 모르면 멍청한 소리하지 말고 조용히 해야하는데 말을 안하면 글을 안쓰면 공부도 안한다.  

박근혜 뉴스나 트럼프 뉴스는 보다 보면 열이 뻗쳐서 안 읽게 되서 너무 모른다. 그래서 멍청하니 닥쳐야하는데 먼가 그래도 정리는 해보고 싶어서 조용한 이곳에. 중간 중간 보는 걸로 느낀 단상들. 


-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는 여태까지의 연설 중 제일 잘 들린다. 이번엔 본인이 썼는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대화로 들린다. 그래서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마음이 가고 안쓰러웠다. 

- '열심히 했는데'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도움이 되고 싶어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런 말이 답답하다.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란 말이야. 한국에서 나는 너무 열심히 성실히 살라고 배웠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 머가 중요한지 생각해보고 가장 중요한 걸 해. 페북에서 항상 듣고 있는 교육이다. 급한 걸 하지 말고 중요한 걸 해, 많이 일하지 말고 중요한 일을 해, 못하면 못한다고 빨리 얘기해,너는 분명히 충분히 거절하고 있지 않아, 성실하게 열심히 할게 아니라 중요한 걸 해, impact 가 가장 큰 게 무얼까, 그걸 고민하고 몇개만 골라서 잘 하란 말이야. 그만 회사에 있고 집에 가. 중요한 것만 하란 말이야 돼 그런 일을 쓸데없이 열심히 하고 있어! 왜 나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을까. 

- 아 잠깐, 실리콘밸리 천국화 주의. 열심히만 하고 있으면 여기는 바로바로 잘린다. 인정사정 없다.

- 한국은 무섭다. 그저 연설문 전문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소름 돋는 욕이 작렬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했기로서 때려죽일 사람이며,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아무리 잘못했기로서 그런 욕을 받아 마땅한가. 찢어죽이고 처형을 하고 능간을 하고 그런 얘기를 해도 된다는 건가? 언젠가 대한항공 딸이 재판에 들어갈때 달걀을 던지고 머리채를 쥐어잡는 어떤 사람을 보고 너는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훨씬 쓰레기 였겠지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형제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한 인간이 잘못하는 데에 한계가 있고, 내가 그걸 단죄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막말은 사형보다 더 심하다. 

- 노무현 대통령의 아내의 스캔들이 터졌을 때였나, 떠났다. 자신은 그걸 고치겠다고 정의를 찾아 들고 일어난 삶이었기에 더 괴로웠겠지. (이 사람은 '그렇다고 가족을 버리란 말입니까' 로 반응했다. 한 사람은 '앞으로는 세상 누구와도 인연을 맺지 않겠습니다' 로 반응하고. ) 두사람이 아무리 다르기로서니, (내 친구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는 한사람은 좋아하고 한사람은 안 좋아한다) 난 왜 비슷하게 보일까. 

- 한국은 모두를 구석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고3도, 취업준비생도, 육아에 치인 직장인 엄마도, 가족부양에 지친 젊은 아빠도, 대통령도, 다 괴롭다. 왜 그렇지. 

- 나찌는 어떻게 인간을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죽였을까, 라는 질문에 시야와 책임감과 악이 분산되어있어서 라는 대답이 기억난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세상에서 없애라고 명령했고, 눈앞에서 처형 시스템을 디자인하거나 고통에 몸부림 치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기에 자신이 무얼하고 있는지 충분히 자각하지 못했다. 중간 간부는 위의 고위간부가 준 임무, 효과적으로 죽이라는 임무에 따라 가스실을 디자인하면서 시키는 일을 할뿐이라고 생각하고 가장 끝에서 유대인을 가스실로 데려가고 시체를 치우는 사람은 시키는 일을 한 군인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의 무능이나 한 인간의 부패는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작은 악에 둔감한 시스템이 겹겹히 쌓이면서 불어나고 큰일이 생긴다. 뉘른베르크에서 우리는 누구를 어디까지 어떻게 처벌해야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세월호는 거대한 스캔들은 누구를 어디까지 처벌해야되나. 희생양을 하나 찾으면 되나.

- 그렇다고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올라가야된다는 건 아니다. 안쓰럽다고 지지하는 사람은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죄인이랄까. 멍청한 건 죄다. 남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 트럼프는 대단한 인간이다. 그 뻔뻔함은 어떻게 보면 가장 미국적이기도 하다.

- 어제도 얘기했는데, 난 SNL 도 정치풍자도 대부분 안 웃긴다. 블랙유머를 별로 안좋아해서 그런 듯. 보고 있으면 짜증나는 일들이 생각나는데 그게 왜 웃긴지 잘 모르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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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6.06.27 06:26 분류없음

요즘은 건강하고 즐겁고 씩씩하고 활기차다. 잘 웃는다. 

유럽여행 이주는 정말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걸어다니고 그랬다. 친구가 있어 집에서 12시까지 자지 않고 아침부터 집에서 나갔다. 혼자 여행햇느면 나가서 늦은 점심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을텐데 나가야할 것 같고 그런 강제된 바쁨이 좋았다. 활기차고, 웃고, 투덜대고, 술에 취해 진상을 피워댔다. 몇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뛰어다니면 활기가 생긴다. 살빠져야할 것 같지만 식욕이 돋아 엄청나게 먹어대서 그렇지도 못했다. 

어쨌든 건강하고 즐거운 나로 돌아와 이제 내가 좀 나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데이트도 시작했는데 으하하하 웃고 있다.  




평소의 나로 돌아왔음에도 연애는 여전히 오래되고 편안한 관계에 집착한다. 괜찮아보이는 새로운 남자하고 즐겁게 얘기는 할 지언정 대답하기는 귀찮고 마음은 가지 않는다. 병신같은 옛남친, 옛남친과 분위기가 비슷한 사람 앞에서 마음이 편해져버리곤 한다. 편안함을 느끼면 마음이 약해진다. 남자에게 매력있는 여자는 처음보는 여자라던데, 어째서 나는 반대인가. 사람하고 가까워지는데 오래 걸리고, 까다롭고, 한번가까워지면 어떻게 끊어내지를 못한다. 그렇게 서로를 잘 아는데, 그 약함을 다 아는데, 그 서로의 모습이 안쓰럽고 애틋한데 나는 잘 헤어지는 사람들이 새삼 신기하다. 


게다가 요즘의 절친들은 다 게이다. 가까운 즐거운 친구들(게이+여자친구들)에 둘러싸여있고, 일때문에 스트레스는 받으나 어쨌든 열라 열심히 일에 불태우며 살고 있는데, 이 패스 오래 타면 안 될 거 같은데 불안해서 투덜투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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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6.05.02 07:55 분류없음

오랜만에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 한쪽 벽면이 확 뚫린 까페에서 반짝거리는 햇살이 들어오는 걸 바라보며 맥북을 놓고 몇달만에 일기를 쓴다. 


1월에 휴가가 끝나고 샌프란 돌아오자 마자 전남친(..) 은 세계 여행 갈 기회를 이야기했고, 결국 두주를 맘고생하다 헤어졌다. 그리고 두달은 힘들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살면서 그가 있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늘 이야기할 누군가가 있었고, 슬프고 기쁜 일이 있을 때 나눌 사람이 있었고, 차에 치여 응급실에 실려갈 때 당연하게 제일 먼저 달려올 '보호자'가 있었다. 24시간 내내 곳곳에서 그의 부재가 느껴졌고, 외로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며칠에 한번은 훌쩍거리다 자고, 술취해 안 하던 짓을 하고, 엉망진창이었다. 내 직업이 스타벅스 바리스타 처럼 서서 하루종일 일하는 몸이 바쁜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그 즈음에 했었다. 우울한 생각에 빠질 틈 없이 몸이 바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해 쓰러져 자는 그런 삶이였으면 좋겠는데 두뇌 노동을 해야하는 직업인지라 회사에서는 멍 때리며 일하지 않고 집에 와서는 잠도 안오는데 일은 못해 불안하고 초조한데 일에 집중은 안되고 그래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다음날 다시 제대로 못 자 피곤하고 그런 악순환이었다.


시간이 지나니 많이 나아졌다. 혼자 한다는 것에 익숙해졌다. 밥은 혼자 먹는 것이 디폴트고, 자잘한 질문은 문자보다 구글에 물어보고, 하루종일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오늘같은 날 밥해먹고 청소하고 느긋하게 까페에 나와 노트북을 여는 것이 외롭지 않고 기분좋고 편안해졌다. 


일이 많아지면서 일에 집착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난 몇달은 일이 바쁜데, 책임감에 질질 끌려가는 모드였다. 주 6.5일 일하면서 꼭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어도 아직 안한 일 해야되는데 못한 일이 생각나서 계속 마음속에 머가 얹힌 것 같았다. 뉴스페퍼민트는 정말 계속 하고 싶었는데, 글을 읽고 쓰고 일주일에 글 하나는 정독을 하면서 생각하는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라 포기하기 싫었는데 거의 세달을 글을 안읽는 삶을 살고 잇으면서 뉴스페퍼민트 때문에 허겁지겁 아무거나 번역하기 쉬운 것 골라 납기만 맞추고 퇴고도 안하는 걸 보니 쪽팔려서 안되겠다 싶었다. 납기도 몇번 놓쳤다. 자잘한 집안 일 - 세금 보고는 늦었고, 카드 값 안내서 연체된 것도 있고, 잘못 청구된 거 따져야하는데 귀찮아서 안한 거 몇 건, 집은 정말 더럽고, 암튼 머 그렇게 허덕이다가 다 끊어냈다. 뉴스페퍼민트도 쉬겠다고 이메일을 썼고, 회사 일도 몇건은 못하겠다 배째라고 했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자리도 안나가고 (해야되는 건 알고 있지만 ㅠㅠ) 대신 푹 자고, 일주일에 두어번 운동하는 것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뉴스페퍼민트 쉬겟단 이메일을 쓸 때는 꽤 괴로웠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의 관계를 지키고 싶어서 하는 것도 있었는데 또 하나 커뮤니티를 끊어낸 느낌. 


그래도 그래서 오늘 맘 편하게 일기를 쓸 시간이 생겼다. 환하게 열린 까페에서 오늘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잘 웃고, 반짝 거리는 햇살을 보며 남의 글 번역하는 거 말고 내글을 쓰는데 집중해보기로 한다. 


일은 괜찮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말 모바일 게임 없계를 뒤흔들어놀 이니시에티브라고 믿고있고 내가 이렇게 큰 일을 벌이고 이끌게 되다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가끔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정말 잘 될 수 있고 큰 혁명이라고 깊이 믿고 있고, 한 떄 "아 이런 되지도 않을일을 머하러 해.. 여휴 멍청한 리더들.." 라고 투덜대면서 안 믿는 일을 하던 때와 비교해보면 내가 이 좋은 기회를 잘 살릴 수 있을까 긴장되고 부담되서 잠을 못자고 두근대는 건 정말 꿈같은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건 정말 다 나하기에 달려서 부담이 되서 죽겟다. 


예전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한 통찰력을 가진 리더가 존경스러웠다. 리더가 되고 보니 통찰력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더 넓은 시야를 가진데서 나온다는 것을 알겟다. 리더가 되면 다른 부서들, 남들은 머하고 있고 우리 일에 어떻게 반응할지 더 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당연히 더 깊은 통찰력이 생기게 된다. 실무를 하는 내가 생각이 부족햇던 것이 아니라, 그저 역할이 달랐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같은 지성을 가진 사람도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되면 더 깊은 통찰력이 생기게 된다. 이를 어떻게 전하고, 잘 활용하는가가 그 사람의 깊이에 달렸는데 요즘 일 잘 못하는 사람/ 의견 다른 사람 잘 못참는 내 급한 성질 머리로는 잘 전파가 안된다. 일에 파묻혀서 괴로워하지 말고 한걸음 물러서서 숨을 크게 쉬고 눈을 뜨고 전파하는 연습부터 해야겟다. 나의 그릇이 커지는게 일도 잘하는 방법이다. 역할이 다르니까. 일에 파묻히지 않는게 일을 잘하는 방법이다. 


단단하고 안정적인 파트너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요즘 나는 작은 성공을 축하하지 못하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취약 (volnerable) 하다. 투덜대고 별거 아닌데? 라는 피드백을 듣고 털어버리면 되는데 일에서 받는 작은 스트레스에 전전긍긍한다. 성공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가 (그닥 성공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좋은 파트너라는 것을 다시 절감한다. 안정적인 연애를 할 때의 내가 가장 resilient 했다. 그치만 머 그런 안정적인 관계를 지어나가는 게 쉬운 것은 아니고, 어설프게 데이트 하다가는 더 취약해지니 아직은 그런 여유가 없어서... 


아무튼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행복하다. 다 회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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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6.01.04 09:32 분류없음
2015년을 돌아보는 글을 쓰자, 일주일은 붙잡고 있었는데 노트북을 펼치기가 싫었다. 2013년의 마지막 날의 일기에는 '남은 인생도 2013년처럼 꽉찬 한해가 되게 하소서' (http://embracetheworld.tistory.com/159) 라고 썼는데 2015년은 '앞으로는 2015년 같지만 않도록 하소서' 였다. 여기까지 쓰고 한해를 돌이켜보는데 기운이 빠져서 글을 쓰기가 싫었다.  

그래도 적어보자. 적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도망다니면 한해 내내 왜 그렇게 무기력증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적고, 정리하고, 내년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지.


  • 예전에는 일과 삶을 나눠썼는데 올해는 뒤엉켜 있어서 그냥 시간 별로 쓰련다.
  • Q1/Q2 : 일이 거의 2015년을 무너뜨렸다. 올해 초 징가는 힘들었다. 내 프로덕트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회사는 실패를 이어가고 있었고 똑똑한 친구들은 떠났다. 4월인가, 세 해 연속 18% 레이오프가 있었다. 회사에서 만난 내 인생의 베스트프렌드 둘이 모두 잘렸다. 긍정적인 성격의 둘은 괜찮아 했는데, 정작 내가 속상해서 울었다. 가깝던 이들이 없어지고 회사의 일은 빡세졌는데 건드리기도 싫었다. 새로 온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거나 친해지기도 싶었다. 
  • 이직 준비: 슬금슬금 하던 이직 준비에 듀데이트가 생기니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가고 싶은 회사도 별로 없고, 내가 기여할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며 내가 좋아하는 회사는 정말 찾기 어렵더라. 게다가 리쿠르팅은 나의 인생을 되아보는 시간인데, 인터뷰에 떨어지면 자학을 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를 왜 몰라주는지 짜증나라는 애들이 많은 실리콘밸리 PM문화에서 나는 항상 움츠러든다. 나빼고 모두 훌륭한 것 같다. 자신감은 없어지고,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못 떠나서 하고 있는 회사일은 견딜 수 없이 싫어지고 그랬다. 
  •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내 탓인가 :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나를 그렇게 몰아간 건 내 문제가 아니었나, 이제 와 그런 생각이 든다. 징가에서는 왕창 레이오프를 한 후에 남은 직원에게 보너스를 줬다. 내가 받은 리텐션 보너스(일년을 더 일하면 주겠다고 약속하는 주식 보너스) 는 내 연봉을 졸지에 두배로 만들어 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모두가 그 금액을 받은 건 아니니 인정받았다고 행복해할 만도 했다. (쓰고보니 기특하다.) 근데 나는 이직은 왜이리 어려운 거야! 라고 회사 떠날 생각만 하며 나를 들들 볶고 하고있었다. 가진 것에 행복해하지 못하고 나의 부족함만 보며 안달낸 건 내 탓이리라.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 가기 싫어 울 지경이었고, 인터뷰 준비를 하다보면 또 떨어질 것 같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 드림잡을 구했다! : 그러던 와중에 최고로 가고 싶던 회사의 드림잡을 얻었다. 나름 이직을 생각하고 소극적이나마 인터뷰를 시작한 게 반년인데 정말 가고 싶던 회사 이 회사 밖에 없었는데, 인터뷰 전날에는 너무 가고 싶어하면 떨어지고 좌절할까봐 일부로 마인드 컨트롤 하던 그런 회사에서 오퍼가 왔다. 기쁜데, 팔짝팔짝 뛰며 파티하기보다 후아 됐다 후아아아아아 후아 드디어 이 굴에서 벗어났구나 다행이야 하는 그런 맘이었다. 
  • 한국과 아시아 여행: 오퍼 받은게 6월 말이었나, 그다음 두달은 쉬웠다. 놀러갈 계획을 세우고 한국과 동남아에 갔다. 푹 쉬고 여행하고 다시 행복한 나로 돌아와야지, 했는데 그 또한 쉽지는 않았다. 혼자 간 캄보디아는 외롭고 약간 무서웠고, (아니 훨씬 위험한 남미를 두달씩 돌아다닐 때는 용감 무쌍하고 즐거워햇으면서! 나이탓인가) 태국은 최고의 친구에 행복했지만 새로운 곳을 보고 싶은 모험심이나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한국은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라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 언제할 거냐는 질문을 5주쯤 들었을 때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고, 미국에 4년을 살면서 친구들과 관심사도 가치관도 멀어진 것 같았다. 미국에 살아서라기 보다는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하는 인생의 큰 변화들이 일어나는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에 내 친구들은 어른의 세계로 건너가고 나는 아직도 철없는 아이 처럼 살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한국 경제도 확 어려워진 게 느껴졌다. 모두 부정적이고 지쳐보였다. 내 친구들의 나이가 어른의 부담감을 깨닫는 시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올 때 마다 어떤 형태로 언제 어떻게 돌아와야하나 고민했는데, 이제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쉬는 동안 다시 신나고 행복한 내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 다시,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 : 자, 이 멋진 직장에서 잘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는데 Q4에 최고로 무너져내렸다. 제너럴 PM으로 뽑혀서 알아서 팀을 찾아야하는 시스템이었는데, 팀을 구하지 못한 기간이 거의 세달 가까이 이어졌다. 내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무렵 사람을 뽑지않는 팀이 대부분이었고 나랑 같이 들어온 경력많은 PM들 대부분 팀 찾는데 두 달이 걸리는 등 모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렇게 무시 받는 건 처음이야 자존심 상해라는 얘기를 많이들 했지만 내가 제일 오래 걸렸다 (...) 나의 경우는 내가 재느라고 몇개를 거절하고 한 팀에서 오퍼를 받았다 취소되는 둥  운 나쁜 사건이 몇개 있었다.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할 부장에게서 업무를 뺏고 멍청하게 출퇴근만 하게 하는 것이 한국 대기업에서 사람을 쫓아내는 방식인데 나도 팀에 못가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부장님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사내 리쿠르팅이라는 것이 모두가 보고 있고, 내 평판이 조금씩 나빠지고, 첫 팀을 정하는 것이 이 직장에서 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만 하긴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있을 때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성격 때문에 커리어상 발전을 해왔겠지만 괴로웠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왔다.
  • 사고 : 최고로 괴로울 즈음에 차에 치였다. 캠퍼스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가서 머리를 꼬맸다. 힘들고 아프고 서럽고 보험 문제까지 다루려니 타향살이의 서러움이 터져 이 때쯤에 거의 무너져내렸다.
  • 이제 12월 말. 암튼 팀은 구했고, 보란듯이 나를 증명해야한다는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근데 올 한 해가 너무 힘들어 커리어 욕심이 되려 사라져버렸다.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다라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재미있게 무언가 만들고 싶다였는데 그게 힘들다면 이렇게 아둥바둥 해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에서 무얼 찾고 싶은가, 길을 잃은 기분이다. 항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더 잘 하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려가서 편안하고 싶다
  •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크고 작은 인생의 고비들에 나를 놓아버리지 않기, 대범해지기, 정신건강을 단단하게 다지기, 이런 것들이 인생의 숙제로 남았다. 새해 결심엔 대범해지기 위해 계획을 세워보자

삶 
  • 전반적으로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다: 2013년에는 하나 일 처리 하면 다음 사이드 프로젝트 하러가고 다음 데이트하고 다음 파티하고 먼가 일처리 팍팍하는 모드가 있었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하기싫었다. 자잘한 고객센터 전화는 몇달 씩 밀리고 안했고, 뉴스페퍼민트 글을 일주일 한개로 줄이고도 힘들었다. 
  • 무기력증에 빠져 여행도 가기 싫었다.: 움직이지 않았다는 인상이 강한데 그래도 돌이켜보니 꽤 된다. 1월 뉴욕 출장에서는 베스트프랜드란 정말 마음을 채워주는구나 확인했고 (고마워) 2월 서른살 생일 베가스는 즐거웠다. 5월 코아첼라 뮤직 페스티벌은 한창 스트레스 받을 때라 캠핑하며 짜증만 낸 거 같아 미안하다. 여름엔 태국, 캄보디아, 한국에 갔다. 10월 다시 할로윈에 베가스에 가서 스트레스를 잊은 척했고(잘 되지 않았다) 12월에는 조금씩 치유되면서 미네소타에서 행복한 혜인이를 만나고 12월에는 다시 뉴욕에서 베프들을 만나 좋았다. 쓰고 보니 한국빼고도 두달에 한번은 어딜 갔었네. 많자나!  
  • 힘들다고 의식적으로 주위에 손을 내밀었다: 남자친구만 본 것 같은 일상이었지만 안친한 이들을 만나는 파티에 안갔다 뿐이지 가까운 사람들과는 나름 속 이야기를 많이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MBA 베프들과는 끊임없이 메신저에서 떠들었다. 샌프란 베프 둘은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다. 올해 J, L, K 와 많이 친해졌고 깊은 얘기를 하게 되었다. 4명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를 잘 유지했고, 2명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은 가족 같고, 3명 새로운 친구와 속 얘기를 다 하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성공했다. 일기 쓰기 잘했다 안 썼으면 내가 이렇게 풍요로운 한해를 보냈는지도 몰랐을 거다. 
  • 술을 많이 마셨다. 내년에는 술을 줄여야겠다. 

연애
  • 힘든 한 해를 버텨온 건 이 아이 덕분이 아닐까 싶다. 없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난다. 특히 Q4에 불면증에 시달릴 때는 심정적으로 크게 의존해서 이렇게 불균형한 관계가 되면 얘가 나에게 질릴 텐데, 라고 불안해했으나 그래도 잘 받아주었다. 고맙다. 든든하다. 
  •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라는 불안감은 있다. 미래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져서 일단 안하고 있다.

자, 이제 그렇다면 2016년 새해 결심을 세워볼까. 
작년 결심 돌이켜보기 (http://embracetheworld.tistory.com/187)
  • 2주에 한번 글쓰기 : 실패. 그래도 한달에 하나는 쓴 듯. 
  • 글쓸 거리가 생길 만큼 새로운 자극 주며 살기 : 실패. 
  • 5키로 빼기: 실패.
  • 스무살처럼 사랑하기 : 스무살처럼 두려움없이 나를 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사랑하며 사는 한해였다. 이 정도면 성공
  • 새 직업 찾기. 다시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 새 직업을 찾았으나 재미없다. 절반의 성공.
2016년 골이 명확치 않아 결심 세우기가 너무 어렵다. 
  • 자신감있고 대범한 사람이 되기. 작은 일들에 흔들리거나 지나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 것. Resilience 키우기. 정신건강 키우기. 삼일째 고민 중인데 골은 있으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 카운셀러를 만나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테라피 한 번 알아봐야지. 
    • 작은 성공을 축하하기. 작은 일을 이루었을 때마다 오바하며 축하하고 기뻐하기. 
    • 인스타그램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행복한 것을 적어올리는 100 happy days 를 하다가 사진 찍는 걸 까먹고 너무 사적인 걸 공유하기도 싫어 관뒀었다.  적당한 매체를 찾아 매일 하루에 하나씩 행복하고 감사한 걸 적어보자. 
    • 운동 재시작. 몸이 가벼워지면 건강해진다. 3키로 빼기! 
    • Own the room 수업 듣기? 실력은 이미 있다 자신감을 키우고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집중할 것.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몇개 찾아 하자.
  • 일에서 목표를 찾자. 일단 Q1 은 나를 입증하는데 집중하자. Q2 까지는 일에서의 새로운 목표와 의미를 찾을 것. 골은 골을 찾는 거다. 
  • 자기 발전 
    • 뉴페 일주일에 하나는 계속 쓰자. 읽고 쓰는 습관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 좋은 영어 문장 하루에 하나베껴쓰기. 
    • 이코노미스트 / 뉴욕타임즈 헤드라인은 꼭 챙겨보기.
  •  삶
    • 술 줄이기. 일주일에 두번 맥스. 많이 마시는 건 한달에 한 번.
    • 운동 일주일에 세번.
    • 사랑한다는 이야기 많이 하기. 섭섭한 것 보다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할것. 
 

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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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6.01.04 09:23 분류없음

한 해동안 블로그에 안 올린 일기를 정리하면서. 쓰던 일기를 다 정리했는데 이직기와 레이오프 직후 미국회사 고용/채용 시스템 후기를 못쓴 게 아깝다. 마저 다 쓰려했는데(6개월 지나;;) 한 거 없이 휴일이 가 버렸네. 


5월 정도에 썼던 연애일기. 그래도 내게는 이게 훨씬 중요했다!

===



기독교인들이 주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과 삶의 만족감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누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배타적인 태도가 문제지만.


요즘의 연애 생활은 편안하고 따뜻하다. 이렇게 충만하고 행복한 거였구나, 라는 마음에 페북에 올라오는 다른 커플 사진도 다 예뻐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다들 나처럼 누군가를 찾을 수 있었으면, 라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앗차 내가 본인의 느끼는 행복을 남이 못 느낀다고 가여워하는 기독교인과 다를 거 없지 않은가! 라고 깨달았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친구들 사회에서 사라져버리는 친구들을 한심해 했는데, 요즘의 내가 그렇다. 라이프 싸이클의 다운 턴에 있을 때 내향적이 되어 가까운 사람만 만나는 성격에 샌프란시스코에 그렇게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이 더해져서일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고 거의 매일 그만 본다. 다른 사람들은 보기도 귀찮고, 피상적인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만나기 전부터 체할 것 같다.

그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저녁에 돌아와 별거 아닌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고 있으면 어느새 스트레스 받던 것은 잊고 웃고 있다. 회사 레이오프가 있던 날 마침 이 아이가 여행중이었는데 어딨어 돌아와 나 5분만 꼭 안아주면 안돼, 라고 칭얼대는 마음이 간절했다. 혼자 있기 싫고 울고 싶었는데 꼭 안아주었다. 꼭 끌어안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손을 잡으면 든든하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빙긋, 웃음짓게 된다.


처음 만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을 줄 몰랐다. 이번 연애의 교훈은 잘 될 것 같지 않아도 시도해보자, 참을성있게 한번 시도해보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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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5.10.07 02:16 분류없음
요즘은 살짝 의기소침해 있다. 페이스북의 팀선택은 정말 이게 가능하나 싶을만큼 놀랄만큼 열려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있는데 팀에 자리가 없거나 그런 보직이 없다면 내가 나의 비젼을 팔면 된다. 그럼 팀을 만들어준다. 입사한 애들의 20%는 그렇게 팀을 만들어 갔다. 내가 가고 싶은 팀에 무작정 가서 왜 좋아하는지 멀 기여할 수 있는지 설득력있게 말하면 그쪽의 매니저도 내가 맘에 들면 어떻게든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멘토들은 그걸 도와주려 든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음 그럼 그팀에 누구랑 이야기해봐 라고 찾아준다. 그 도움을 받아, 나는 일을 벌이기만 하면 된다. 일벌이기 좋은 훌륭한 문화다. 
대신 가만히 있는데 주어지는 일은 없다. 팀도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나가서 찾아야하는 거다. 훌륭한 문화인데, 똑똑하게 시키는 일 해온 많은 한국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할 거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닌데, 내게 진짜 문제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우기면 되는 게 아니라 매니저든 나랑 같이 일할 사람이든 그들의 환심을 사야한다는 거다. 공식적으로는 인터뷰가 아니나 사실상 매일매일 인터뷰의 연장선. 보는 사람마다 잘 보이고 싶고, 잘 보여야한다는 압박이 있다. 처음 이야기한 팀에 그냥 조용히 갈라 그랬는데 그 팀에서 결국 거절당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인터뷰 때 너 정도면 괜찮네, 라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내가 너무 좋아서 나한테 훌떡 반하는 사람은 잘 없는데. 거기다가 백인 남자랑 업무 베프였던 적도 없고. 같이 일하기 불만은 없어도 좋아 죽었던 적도 별로 없다. 근데 이건 누가 나랑 일하고 싶어 확 땡겨줘야하는 시스템.
영어로 문서를 써야한다는 것에 쫄아서 일 잘할 자신이 없는데, 솔직히 자신감이 없는데 자신있는 척하니 가시방석이다. 조직이 정해지고 팀으로 일하게 되면 조용하게 모르는 것 인정하면서도 밀어일 거는 자신있게 강단있게 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첨보는 사람에게 나 처럼 잘난 사람 없으니 나에게 일을 다오! 라고 하기는 역시 성격에 안 맞는다. 

오늘은 한국에서 같이 일하던  l 님을 만나 이야기 하는데 막연히 미국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고(아닐 수도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 섞인 조언을 한 것 같아 뒤돌아 후회된다. 나도 오기 전엔 아무것도 개뿔 몰랐는데, 그 무렵의 나에게 손내밀기는 커녕 잘난척한 거는 아닐까. 
그러고보면 꾸준히 한단계씩 올라왔다. SKT 에서 MIT MBA 로, MBA에서 징가로, 징가에서 페이스북으로. 10년전 내게 내가 페이스북 본사에서 일할 것이라 했으면 나는 입을 떡 벌렸을 거다. 아니 5년전, 3년전 내게만 말했어도 깜짝 놀랄거다. 그렇게 한단계씩 올라올 때마다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었다.

SKT 연수 때 백명 넘는 소셜한 사람들 사이에서 움츠러들었다. 연수원에서 술을 퍼마실 때 나도 모두가 좋아하고 어울리고 싶고 유머도 잘 던지는 소탈한 사람이엇으면, 아니면 엄청 예쁘기라도 해서 다들 먼저 다가와줬으면이라고 뒤에서 짐짓 쫄아있었다. 소심한 여고생처럼.
MBA지원할 때는 나 따위가 될까 싶어 아주 쫄아있었다. 시험점수가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한번씩 불안감에 휩싸여 어쩔줄 몰라했다. K 오빠 페이스북을 보다가, 아 그 때 이 오빠가 "희상아 긍정의 힘!" 이라고 씩씩하게 외쳐주는 것에 괜히 마음이 든든하게 차올랐었지 그래서 참 고마워했었지 라고 기억이 났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당연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에 참 쫄아있었다.
MBA 와서도 소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터네셔널과는 그래도 친해질 수 있었는데, 끝까지 완전 미국애들하고는 친해지지 않았다.  
징가 와서는 몰래 근무를 더 했다 영어를 너무 못해서. 지금 페북에서 영문서 쓰는 것에 쫄아있는데 사실 징가나 델 때는 영어 이메일도 써본적도 없었다. 멍청한 소리를 하고 파워포인트에 문법 다 틀려 있는데 베시시 웃는 아시안 여자애가 된게 자존심 상해서 어디가서 코박고 죽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나, 베시시라도 웃어야지 멍청한 소리하고 얼굴까지 찌푸리는 멍청이가 될 수도 없고. 
지금은 멋있고 우와! 소리 나는 PM이고픈데 별 인상 못주는 PM이라 혼자 스트레스를 주며 의기소침한 거다. Box 의 First Employee 고, 마이크로소프트 팀장이었고, 페이스북에 스타트업을 매각했고, 넥스트도어 VP였고 너무 대단한 사람들을 보며 (아니 그런데 너 여기에 고작 PM으로 있는 거야 디렉터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는 것에 혼자 짐짓 의기소침해지는 거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도 내가 참 어이가 없네.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정말 많이 발전했는데 올챙이적 일은 까먹고 참 욕심도 많다. 일기쓰고 보니 의기소침한게 가셨다. 편하게 생각하자. 내일은 더 나은 내가 더 발전한 내가 되어있겠지.

근거없는 자신감이야 말로 창업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나는 그게 없어서 창업자는 진작에 포기. 나는 맨날 왜 이렇게 쫄까? 사실 잘 하는데. 쫄지만 말자. 나 정말 기특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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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5.09.10 15:18 분류없음

잊기전에 적어놓기. 


징가를 떠날 떄에는 마음이 후련했다.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한 섭섭하고 그저 후련했다. 그렇게 후련한 게 미안해서 안 들키려고 조심스럽게 페이스북 포스팅을 적었을 만큼. 굿바이 이메일도 며칠전 부터 적었는데 정말 아주 담백하게 적어야지 싶었다. 다 지우고 모바일로 5줄로. 그동안 고마웠어, '친구들과' 일할 수 있어서 기뻤어, 안녕! SKT 를 떠날 떄 작별인사는 왜 그렇게 징징거렸는지. (머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떄는.)

징가에게는 그저 고맙다. 미국 직장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것, 나를 '훈련'시켜준 것, 미국 직장답지 않게 많은 '친구들'을 만든 것, 존경할 수 있는 롤모델을 만난 것, 그리고 몇년만에 다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고 어울릴 수 있었던 것. 어찌보면 MBA보다 훨씬 호되게 더 많이 배우는 경험이었다. 나를 완전히 바꾸어논 소중한 경험이고 다시 뛰어들 경험이지만 더이상 이곳에 남을 이유는 남지 않았다.  



페이스북 시작 2주차.

첫주는 교육이나 받고 이렇게 널럴할 수가 없다. 하루에 두세시간 교육받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완벽하다. 불안한 점이라면 일을 엄청 많이 할 것 같고 잘해야할 것 같은 정도.


오래전 일기를 읽으니 징가를 시작하던 날에도 세뇌를 당했다. '우리는 게임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어. ' 라고. 그때는 동감할 수 없어 아 난 게임산업 안좋아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 왜 있지라고 자괴감이 들었는데, 페이스북이 미션에 대해 말할 때는 내 뇌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스피커로 선 Alex shultz 는 커밍아한 경험에 대해 말햇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커밍아웃을 당한 대학생 때, 세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고. 첫번째 게이를 지지하는 부류, 두번째 끝까지 싫어하는 부류, 세번째 게이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으나 자신을 알고 자신의 친구였기 때문에 의견을 바꾼 부류. 세번째 부류를 보고 단순히 몰랐던 것이었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소통할 수록 세상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생긴다는 걸 믿는다고 했다. 미국 사람이 이라크 친구가 있었더라면,  이라크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열리고 더 연결된 세상을 만들고 있다. 그런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게 말을 했다. 


아 낯뜨겁게, 거대한 미션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말하다니, 나는 덩달아 내 진심을 들어내놓고 공격 받을 까봐 volnerable해진 느낌이었다. 저거 내가 2006년에 유니세프에 자기소개서 쓰면 했던 얘기인데. 부시가 이라크에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있었고, 사람 사는 사회라는 인식이 있었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너무 나이브하게 오바하는 것 같아서 낯뜨거워지는 그렇지만 정말로 믿고 있는 미션. 그 다음 발표자도 그 다음 발표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Impact 를 끼칠거야 소통과 열린 세상 같은 단어를 하루에 스무번씩 듣고 문득 거대한 언어들이 식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믿고 있던 것들이 식상하고 고리타분한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실리콘밸리의 아주 식상한 전형적인 모델이 된 느낌이다. "테크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더 열리고 더 소통하는 세상" "다양성에 대한 존중" "더 효율적인 집단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것" "일을 잘하는 사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잘하는 자가 잘된다 잘하는 자에게 투자를" 같은 가치들을 그대로 믿는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소개를 하라 그럴 때 여행을 많이 다녔다, 뉴스 관련 스타트업을 했다, 정보의 확산과 열리고 소통하는 세상을 믿는다, 같은 걸 말하면 남들과 너무 비슷한 사람이므로 잊혀진다. 말하나마나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저 말을 하고 있는 페북 직원의 절반은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따라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절반은 나와 같이 진짜로 이걸 믿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리라. 내가 식상한 인간이 되었다고 one of them 이 되었다고 어쩐지 허탈한 느낌에 빠질 것이 아니라, 잘 찾아왔다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잘 찾아왔다고 기뻐할 일이다. 근데, 여전히 기분이 이상하다. 




+ 그리고 이어서 몇개 더. 알렉스 슐츠의 스피치는 여러가지 페북의 비젼과 프로덕트에 얘기하는데 숨김없고 탁 털어놓아서 좋았다. 이를테면 중국 진출이나 악플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못하고 있다고 최대한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대응하고 있으나 문제가 많다고, 어떻게 고칠지 아이디어 있으면 들어와서 고쳐달라 했다. 실제로 그렇게 아무나 뛰어들어 고친 문제가 많은 듯했고, 대기업이라는 걸 믿을 수 없게 열려있는 조직이란 걸 느낀다. 

일주일 부트캠프하면서 안 건 모든 코드가 다 열려있고, (심지어 회사 밖에도 열린 오픈소스가 많다) 사내에서 보낸 메일은 테스크로 갈무리 되어 모두에게  노출되고 누가 멀하고 있는지 거의 모든 게 투명하게 노출된다. 문제를 발견하면 아무나 뛰어들어 고친다. 진짜로. 

느낀거 몇가지는 이번주 내로 더 적어놔야지. 안 그러면 까먹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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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5.08.01 22:44 분류없음

한국에 왔는데 불쾌지수가 높아져서 일까, 부쩍 못참고 짜증을 내고 있다. 많은 게 거슬리는데, 그만큼 내가 이 사회에서 멀어져서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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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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