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가에서 지난 목요일 ( 1/30) 15% 인력을 해고했다. 운영하는 게임 대비 직원수가 너무 많다는 비판이 예전부터 있었고, 벌써 세번째 대대적인 레이오프다.
나는 처음 겪는다. 우리팀은 그나마 타격이 적은 편이었는데도 내 옆에 앉는 친구가 떠났고 올해 채용에서 MIT MBA 에서 세명이 왔는데 그중 두명이 잘려나가고 나만 남았다.(한명은 두달후 떠나는 조건) 표정관리가 잘 안됐다. 내 옆에 앉던 J는 보상금을 잘 받았다며 웃고 있다 나를 보고 "야야야 왜그래 슬픈 표정짓지마" 라고 했다. 그때 나는 매우 슬펐는데, 얼굴에 드러나 보였나 싶어 뜨끔했다. J가 잘됐다며 신난 얼굴을 짓는 건 "척" 일거란 생각을 했다. 자존심 센 친구가, 자존심에 상처를 안 받았을 리 없고 그래서 "아하하 잘됐다"라는 표정을 일부러 지은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착잡했다.
처음 겪은 대대적인 레이오프. 몇가지 단상.
1.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찬성한다.
10% 레이오프는 사실 조직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도와준다. 회사전체 15%라는 해고 기준이 떨어졌을 때, 조직마다 다른 해고기준이 떨어진다. 핵심팀이 아닌 써포팅 조직들 - 이를테면 중앙관리 조직(인사재무 등), 글로벌 담당 조직, 광고, 퍼블리싱 등- 에게는 50% 해고가 떨어지고 우리처럼 비교적 잘나가는 게임에는 5~10% 정도 할당량이 떨어진다.
5~10% 해고라면 약간의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떠나게 된다. 그건 조직에도,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 J만 해도, 영민한 친구이나 뺀질거림의 최고봉을 달리곤 했었다. 징가에 질릴 때로 질려있는 듯했는데 나는 그게 많이 신경이 쓰였다. " J, 나는 너를 좋아해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 이러는거 너한테 안좋아. 내가 같은 상황에 있어봐서 아는데, 일 안하고 쉽게 돈받는거, 이렇게 뺀질대는거 버릇돼. 회사가 싫으면 투덜댈 게 아니라 상황을 바꾸려 노력해야하고,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판단이 들면 차라리 빨리 떠나." 나는 정말 그가 걱정됐다. J 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러나 말이 쉽지 있는 직업을 잘라내고 떠나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팀에서 나간 세명 - 뺀질거리던 J , 게으르던 L , 그리고 일을 따라올 수 없었던 R- 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첫직장이 이곳이었다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직장에서 지긋지긋하게 일못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너무 치이곤 했다. J 같은 사람 동료들은 의욕이 없어진다. "아 저렇게 회사다녀도 되는데, 열심히 하는 내가 바보인건가" 기운이 빠진다. 의욕상실은 전염된다. 일 못하는 사람은 본인도 힘들다. 그뿐인가, 동료는 같은 일을 스무번씩 설명하면서 진이 빠진다. 심지어 가끔은 사고친 것도 메꿔주어야한다.
어딘가 내가 필요한 곳이 있는데, 바보취급 받으면서 현재 직장에 머무르는건 서로에게 지치고 해가된다. 회사도, 직원도, 자신에게 가장 맞는 곳을 계속 찾아가는건 서로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2.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는가
인력해고를 자유화하는게 맞다면, 철도 노동자들 또한 해고할 수 있도록 해주었어야하는 건가. 노동조합의 설립을 막아야 하는 건가. 자유화, 자유화, 자유화가 답인데?!
해고문제가 복잡해지는 건 한 인간의 삶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징가의 해고문제가 비교적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건 직원 평균연령 28세의 젊은 회사이고, 대부분 딸린 가족 없이 싱글이며, 평균 연봉 $100 K 이상은 되는 좋은 직장이다보니 대부분 능력있는 친구들이고 다음 직업을 구하는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들 고급인력은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 와는 다르다.
한국과 미국의 직장의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한다. 미국은 직장을 바꾸면서 승진하는 문화가 일반적인 곳이다. 경력직을 항상 채용하고 있고, (일자리가 있고) 해고되거나 관둔 것이 치명적인 결점으로 비춰지지 않으며, 해고 되었을 경우 직원에 대한 보상시스템이 갖춰져있다. 이건 복지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이다.
고용유연화를 하고 싶으면 그에 맞추어진 사회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야한다. 당장 잘려도 몇달 직업을 찾을만한 써포트가 주어지고, 그들이 구할 수 있을만한 일자리가 있어야한다. 평생고용제를 기반으로 복지시스템이 지어진 한국에서 정리해고는 치명적이다. 시스템과 실제 해고는 닭과 달걀의 문제일 수 있다.
3. Wake up Call
졸고 있다가 얼굴에 찬물이 끼얹혀진 느낌이다. 나도 일을 잘해야 살아남겟구나!
* 타이밍 기가 막힌 레이오프 전날 (1/29) 의 일기*
"요즘 일을 굉장히 못해서 회사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있다. 예전회사 몰래 숨어서 MBA 준비할때 같이 일하던 매니저님한테 창피하던 기억이 난다. 뺀질거렸고, 일을 못했고, 원래 이렇게 뺀질대는 인간이 아닌데 나를 완전 바보로 생각하겠군 싶어서 괴로웠다. 요즘 그꼴이다.
12월 회사 일이 별로 없을 때 뉴스페퍼민트에 제대로 버닝했고 그 다음부터 일하는 모드가 안돌아오고 있다. 거의 한달 째 계속되는 슬럼프. 기절하겠네. 영어가 안되고, 머리가 안돌아가고,(생각하기가 귀찮고) 의욕이 없는 삼중고로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아 미치겠네. 정신차려!"
솔직히 내가 일 제일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일 못하는 애들이 왕창 잘렸고 나는 내 에너지의 50% 도 활용 안하고 있었다. 헉, 갑자기 부담이 되서 소화가 안된다. 다시 매일같이 숨어서 야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이제 사회생활 7년차다. 서서히 커리어 '중반기' 를 고민할 때이다. 야근을 하면서, 무조건 주어지는 일을 잘하려 분투할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친구들과 미국회사에서 PM 으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 관심있는 것에 포커스 하고 싶다. International Business Dev 과 연관된 PM 일, 그러니까 아시아를 공략하는 상품의 PM, 아시아 시장 비즈뎁, 혹은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진출하는 상품의 PM 겸 비즈뎁, 같은 곳으로 가고 싶다. 게임 비지니스도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오기전부터 그게 고민이었음) 저널리즘이나 컨슈머 인터넷 인더스트리로 가고 싶다.
J 에게 잔소리할 게 아니라, 나도 여기서 확실히 잘하던지, 빨리 더 잘 할 수 있는 곳으로 나가 내갈길 찾던지, 움직여야한다. 이번 해고는 심각한 wake up call 이다.
4. 어쨌든 씁쓸하다.
어쨌든 착잡하다. J 가 보고 싶고, K 가 안쓰럽고 걱정된다. 며칠이 지나자 아무렇지 않게 회사가 돌아가는게 섭섭하다. (두명의 일을 떠맡은 나를 비롯해 모두 바빠지긴 했다.)
회사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회사에 대한 애정도는 떨어졌다. 그렇게 잔인하고 차갑게 굴수도 있구나. 회사는 회사일 뿐이구나. 회사나 상품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 내가 할일을 못하는게 싫으니 똑바로 잘하려 노력은 하겠지만, 일은 일일 뿐이다.
예전에는 '내새끼' 티캐시가 욕을 먹으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SKT 라는 회사에도 그런 애정이 있었다. 지금도 텔레콤이 욕먹는 게시물은 클릭하기가 싫다. 멀 잘못하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애정이 있다. 이곳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