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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8. 12:53 diary

3월의 일기 - 전우애


유학생들을 보면 한국의 오래된 친구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관계를 잘 이어나가는 애들도 많던데 난 참 그런걸 못하겠다. 오면 외국친구들하고 영어만, 한국가면 한국친구들하고만, 관계가 뚝뚝 끊어진다. 대신 몇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어느날 난데없이 전화해 한시간 수다를 떠는건 잘한다. 다음 연락까지 또 일년씩 소식이 끊겨버리지만 그래도 언젠가 너 보러 가마, 이런 빈말이 되기 쉬운 약속은 잘 지킨다. 러시아 친구보러 불쑥 러시아도 갔고 브라질 친구 집에 불쑥 쳐들어가 그집에서 잔적도 있다. 오랜만에 보았는데 여전히 우리가 가깝던 그시절 통하듯 통하면, 너무 기쁘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MIT MBA친구들 60명을 데리고 한국에 가는데, 미국판 오덕 하나가 게이머로서 한국 PC방 성지순례를 가고싶다고ㅋㅋㅋ 페북에 글을 올렸다. SKT 다닐 때 옆팀이 게임사업팀이라 e리그 표가 넘쳐났던 기억이 나서, 친하던 동기오빠한테 몇년만에 불쑥 쪽지를 보냈다. 잘 있냐고, 표좀 구해달라고 ㅋㅋ 머하나 말 던지면 막 일벌이는 Y오빠, 어쩌고저쩌고 물어보더니 아는분에게 메일 써주겠다고 게임 관람 요청하게 상세내용 보내달란다. 홍보팀도 불러도 될거 같은데 어쩌고.

워워워 잠깐, 우리 일정은 다 정해져서 시간 없고, 얘랑 몇명 알아서 가는 정도야 일벌이지마 워워워. 하여튼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벌이기는. 여전히 오빠같구나 좀 편하게 좀 살아 ㅋㅋ

아그런거구나 너도 똑같애 그걸 왜 니가 표 구해주고 앉았냐 그런건 오덕들 알아서 하라그래 ㅋㅋㅋ


한두마디에 또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빠는 미생에 나오는 오과장님(오차장님) 같았다. 맨날 회사일에 치여서 눈은 시뻘겋고, 피곤하다면서 자리에 가면 밤 11시에 기획서 쓰면서 신나있고, "오빠 일좀 벌이지마!" 그러면 "아니 이거는 진짜 좋은 기회라.. 내가 한시간만 더하면 효과가 이렇게 보인단 말이야" 이러면서 3시간 더 일하고 앉았고. 진짜 회사 오덕. 결국 쓰러져서 링겔까지 맞았던 것 같다.

똑같던 나도 곧잘 밤 11시-12시에 가서 징징대곤 했다. "나 가입자 오늘은 1000명 밖에 안늘었어. 마케팅행사 5개나 집행하면서 어제도 밤샜는데 했는데 왜 200명이나 준거야" 라고 말하면서 눈물이 핑돌아도 Y오빠한테는 바보 취급 안당했다. 내가 거기에 매달리고 있던 게 우스워 보이지 않았다. 아 정말 그때는 그런걸로 눈물이 났다. 정작 남자친구 전화는 다 안받아 버리고 한밤중에 동기한테 회사일로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맹세컨데, 남녀간 긴장은 절대 없이 머리에 일 생각만 가득했다.


전우애인가, 그 치열하던 때가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서로 토닥여주던게 기억난다. 그때 서로를 아껴주던 만큼 지금도 마음 깊이 아낀다는 걸 알고 있다. 재산같다. 든든하다.




4월의 일기.


동성애자를 교회에서 '치유'해야한다, 세상에는 근본적으로 옳은 것과 틀린것이 있는데 모두가 옳다고 우기는 현대사회에는 문제가 많다, 라고 말하는 20대 여성에 경악해 며칠째 패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시스트나 나찌스트나 민족주의자나 독실한 기독교도나 나꼼수광팬이나 똑같은 종류의 피곤함을 불러일으킨다. 어차피 안될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터져나오는 반박을 꾹꾹 참는 것도 똑같이 지친다. 너무 피곤해서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피했다. 이렇게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지고 내 써클에 갇혀버리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7월의 일기. 한국. 


한국에 가서 할일을 쭉 적는데 만나야할 사람들 리스트에 30그룹 정도가 나왔다. 얘네는 이렇게 묶고, 쟤네는 저렇게 묶고.. 고등학교, 대학교 1학년, 전공, 어디 같이 여행한 사람, 회사 동기, 같은부서 동기, 친한 쥬니어 선후배, 팀 어르신들 죽죽죽..

매일 사람들을 만나니 다 다른 사람들인데도 지겹다. 매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결혼하지 않은 이는 결혼하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 결혼한 이들은 신혼에 신나있거나, 육아에 바쁘거나, 퇴직이 걱정이거나, 공식같은 삶의 어느 단계에선가 하는 고민들이 모두똑같다. 즐거운 만남은 삼일에 하나나 있을까 - 하루 두세탕 뛰니 열에 한두개 이군. 사람 만나는게 지겨워 져서 이번주는 쉬고 있다. 







posted by moment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