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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에 해당되는 글 156건

  1. 2016.01.04 2016년을 시작하면서 (7)
  2. 2016.01.04 2015/5/10 연애의 행복
  3. 2015.10.07 팀 찾는 중 (1)
  4. 2015.09.10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면서 (4)
  5. 2015.08.01 예민해지고 짜증을 잘 낸다
  6. 2015.06.27 오늘은 좋은 날
  7. 2015.06.25 블로그의 중요성
  8. 2015.06.06 쉐릴 샌드버그의 소회
  9. 2015.05.11 글을 쓰자 (1)
  10. 2015.03.23 일요병
2016.01.04 09:32 분류없음
2015년을 돌아보는 글을 쓰자, 일주일은 붙잡고 있었는데 노트북을 펼치기가 싫었다. 2013년의 마지막 날의 일기에는 '남은 인생도 2013년처럼 꽉찬 한해가 되게 하소서' (http://embracetheworld.tistory.com/159) 라고 썼는데 2015년은 '앞으로는 2015년 같지만 않도록 하소서' 였다. 여기까지 쓰고 한해를 돌이켜보는데 기운이 빠져서 글을 쓰기가 싫었다.  

그래도 적어보자. 적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도망다니면 한해 내내 왜 그렇게 무기력증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적고, 정리하고, 내년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지.


  • 예전에는 일과 삶을 나눠썼는데 올해는 뒤엉켜 있어서 그냥 시간 별로 쓰련다.
  • Q1/Q2 : 일이 거의 2015년을 무너뜨렸다. 올해 초 징가는 힘들었다. 내 프로덕트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회사는 실패를 이어가고 있었고 똑똑한 친구들은 떠났다. 4월인가, 세 해 연속 18% 레이오프가 있었다. 회사에서 만난 내 인생의 베스트프렌드 둘이 모두 잘렸다. 긍정적인 성격의 둘은 괜찮아 했는데, 정작 내가 속상해서 울었다. 가깝던 이들이 없어지고 회사의 일은 빡세졌는데 건드리기도 싫었다. 새로 온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거나 친해지기도 싶었다. 
  • 이직 준비: 슬금슬금 하던 이직 준비에 듀데이트가 생기니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가고 싶은 회사도 별로 없고, 내가 기여할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며 내가 좋아하는 회사는 정말 찾기 어렵더라. 게다가 리쿠르팅은 나의 인생을 되아보는 시간인데, 인터뷰에 떨어지면 자학을 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나를 왜 몰라주는지 짜증나라는 애들이 많은 실리콘밸리 PM문화에서 나는 항상 움츠러든다. 나빼고 모두 훌륭한 것 같다. 자신감은 없어지고,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못 떠나서 하고 있는 회사일은 견딜 수 없이 싫어지고 그랬다. 
  •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내 탓인가 :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는데 나를 그렇게 몰아간 건 내 문제가 아니었나, 이제 와 그런 생각이 든다. 징가에서는 왕창 레이오프를 한 후에 남은 직원에게 보너스를 줬다. 내가 받은 리텐션 보너스(일년을 더 일하면 주겠다고 약속하는 주식 보너스) 는 내 연봉을 졸지에 두배로 만들어 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모두가 그 금액을 받은 건 아니니 인정받았다고 행복해할 만도 했다. (쓰고보니 기특하다.) 근데 나는 이직은 왜이리 어려운 거야! 라고 회사 떠날 생각만 하며 나를 들들 볶고 하고있었다. 가진 것에 행복해하지 못하고 나의 부족함만 보며 안달낸 건 내 탓이리라.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 가기 싫어 울 지경이었고, 인터뷰 준비를 하다보면 또 떨어질 것 같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 드림잡을 구했다! : 그러던 와중에 최고로 가고 싶던 회사의 드림잡을 얻었다. 나름 이직을 생각하고 소극적이나마 인터뷰를 시작한 게 반년인데 정말 가고 싶던 회사 이 회사 밖에 없었는데, 인터뷰 전날에는 너무 가고 싶어하면 떨어지고 좌절할까봐 일부로 마인드 컨트롤 하던 그런 회사에서 오퍼가 왔다. 기쁜데, 팔짝팔짝 뛰며 파티하기보다 후아 됐다 후아아아아아 후아 드디어 이 굴에서 벗어났구나 다행이야 하는 그런 맘이었다. 
  • 한국과 아시아 여행: 오퍼 받은게 6월 말이었나, 그다음 두달은 쉬웠다. 놀러갈 계획을 세우고 한국과 동남아에 갔다. 푹 쉬고 여행하고 다시 행복한 나로 돌아와야지, 했는데 그 또한 쉽지는 않았다. 혼자 간 캄보디아는 외롭고 약간 무서웠고, (아니 훨씬 위험한 남미를 두달씩 돌아다닐 때는 용감 무쌍하고 즐거워햇으면서! 나이탓인가) 태국은 최고의 친구에 행복했지만 새로운 곳을 보고 싶은 모험심이나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한국은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라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 언제할 거냐는 질문을 5주쯤 들었을 때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고, 미국에 4년을 살면서 친구들과 관심사도 가치관도 멀어진 것 같았다. 미국에 살아서라기 보다는 결혼하고 집을 사고 아이를 낳고 하는 인생의 큰 변화들이 일어나는 이십대 후반 삼십대 초반에 내 친구들은 어른의 세계로 건너가고 나는 아직도 철없는 아이 처럼 살고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한국 경제도 확 어려워진 게 느껴졌다. 모두 부정적이고 지쳐보였다. 내 친구들의 나이가 어른의 부담감을 깨닫는 시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올 때 마다 어떤 형태로 언제 어떻게 돌아와야하나 고민했는데, 이제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쉬는 동안 다시 신나고 행복한 내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 다시, 자존심이 무너져 내렸다 : 자, 이 멋진 직장에서 잘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는데 Q4에 최고로 무너져내렸다. 제너럴 PM으로 뽑혀서 알아서 팀을 찾아야하는 시스템이었는데, 팀을 구하지 못한 기간이 거의 세달 가까이 이어졌다. 내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무렵 사람을 뽑지않는 팀이 대부분이었고 나랑 같이 들어온 경력많은 PM들 대부분 팀 찾는데 두 달이 걸리는 등 모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렇게 무시 받는 건 처음이야 자존심 상해라는 얘기를 많이들 했지만 내가 제일 오래 걸렸다 (...) 나의 경우는 내가 재느라고 몇개를 거절하고 한 팀에서 오퍼를 받았다 취소되는 둥  운 나쁜 사건이 몇개 있었다.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할 부장에게서 업무를 뺏고 멍청하게 출퇴근만 하게 하는 것이 한국 대기업에서 사람을 쫓아내는 방식인데 나도 팀에 못가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부장님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사내 리쿠르팅이라는 것이 모두가 보고 있고, 내 평판이 조금씩 나빠지고, 첫 팀을 정하는 것이 이 직장에서 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스트레스를 받을 만 하긴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있을 때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 성격 때문에 커리어상 발전을 해왔겠지만 괴로웠다.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왔다.
  • 사고 : 최고로 괴로울 즈음에 차에 치였다. 캠퍼스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에 치여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가서 머리를 꼬맸다. 힘들고 아프고 서럽고 보험 문제까지 다루려니 타향살이의 서러움이 터져 이 때쯤에 거의 무너져내렸다.
  • 이제 12월 말. 암튼 팀은 구했고, 보란듯이 나를 증명해야한다는 압박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근데 올 한 해가 너무 힘들어 커리어 욕심이 되려 사라져버렸다. 나는 무엇을 이루고 싶다라기 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재미있게 무언가 만들고 싶다였는데 그게 힘들다면 이렇게 아둥바둥 해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에서 무얼 찾고 싶은가, 길을 잃은 기분이다. 항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서 더 잘 하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려가서 편안하고 싶다
  •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크고 작은 인생의 고비들에 나를 놓아버리지 않기, 대범해지기, 정신건강을 단단하게 다지기, 이런 것들이 인생의 숙제로 남았다. 새해 결심엔 대범해지기 위해 계획을 세워보자

삶 
  • 전반적으로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다: 2013년에는 하나 일 처리 하면 다음 사이드 프로젝트 하러가고 다음 데이트하고 다음 파티하고 먼가 일처리 팍팍하는 모드가 있었는데 올해는 아무것도 하기싫었다. 자잘한 고객센터 전화는 몇달 씩 밀리고 안했고, 뉴스페퍼민트 글을 일주일 한개로 줄이고도 힘들었다. 
  • 무기력증에 빠져 여행도 가기 싫었다.: 움직이지 않았다는 인상이 강한데 그래도 돌이켜보니 꽤 된다. 1월 뉴욕 출장에서는 베스트프랜드란 정말 마음을 채워주는구나 확인했고 (고마워) 2월 서른살 생일 베가스는 즐거웠다. 5월 코아첼라 뮤직 페스티벌은 한창 스트레스 받을 때라 캠핑하며 짜증만 낸 거 같아 미안하다. 여름엔 태국, 캄보디아, 한국에 갔다. 10월 다시 할로윈에 베가스에 가서 스트레스를 잊은 척했고(잘 되지 않았다) 12월에는 조금씩 치유되면서 미네소타에서 행복한 혜인이를 만나고 12월에는 다시 뉴욕에서 베프들을 만나 좋았다. 쓰고 보니 한국빼고도 두달에 한번은 어딜 갔었네. 많자나!  
  • 힘들다고 의식적으로 주위에 손을 내밀었다: 남자친구만 본 것 같은 일상이었지만 안친한 이들을 만나는 파티에 안갔다 뿐이지 가까운 사람들과는 나름 속 이야기를 많이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MBA 베프들과는 끊임없이 메신저에서 떠들었다. 샌프란 베프 둘은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다. 올해 J, L, K 와 많이 친해졌고 깊은 얘기를 하게 되었다. 4명 오래된 친구와의 관계를 잘 유지했고, 2명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들은 가족 같고, 3명 새로운 친구와 속 얘기를 다 하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성공했다. 일기 쓰기 잘했다 안 썼으면 내가 이렇게 풍요로운 한해를 보냈는지도 몰랐을 거다. 
  • 술을 많이 마셨다. 내년에는 술을 줄여야겠다. 

연애
  • 힘든 한 해를 버텨온 건 이 아이 덕분이 아닐까 싶다. 없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이 안난다. 특히 Q4에 불면증에 시달릴 때는 심정적으로 크게 의존해서 이렇게 불균형한 관계가 되면 얘가 나에게 질릴 텐데, 라고 불안해했으나 그래도 잘 받아주었다. 고맙다. 든든하다. 
  •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라는 불안감은 있다. 미래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파져서 일단 안하고 있다.

자, 이제 그렇다면 2016년 새해 결심을 세워볼까. 
작년 결심 돌이켜보기 (http://embracetheworld.tistory.com/187)
  • 2주에 한번 글쓰기 : 실패. 그래도 한달에 하나는 쓴 듯. 
  • 글쓸 거리가 생길 만큼 새로운 자극 주며 살기 : 실패. 
  • 5키로 빼기: 실패.
  • 스무살처럼 사랑하기 : 스무살처럼 두려움없이 나를 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사랑하며 사는 한해였다. 이 정도면 성공
  • 새 직업 찾기. 다시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 새 직업을 찾았으나 재미없다. 절반의 성공.
2016년 골이 명확치 않아 결심 세우기가 너무 어렵다. 
  • 자신감있고 대범한 사람이 되기. 작은 일들에 흔들리거나 지나치거나 스트레스 받지 말 것. Resilience 키우기. 정신건강 키우기. 삼일째 고민 중인데 골은 있으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 카운셀러를 만나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테라피 한 번 알아봐야지. 
    • 작은 성공을 축하하기. 작은 일을 이루었을 때마다 오바하며 축하하고 기뻐하기. 
    • 인스타그램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행복한 것을 적어올리는 100 happy days 를 하다가 사진 찍는 걸 까먹고 너무 사적인 걸 공유하기도 싫어 관뒀었다.  적당한 매체를 찾아 매일 하루에 하나씩 행복하고 감사한 걸 적어보자. 
    • 운동 재시작. 몸이 가벼워지면 건강해진다. 3키로 빼기! 
    • Own the room 수업 듣기? 실력은 이미 있다 자신감을 키우고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집중할 것.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몇개 찾아 하자.
  • 일에서 목표를 찾자. 일단 Q1 은 나를 입증하는데 집중하자. Q2 까지는 일에서의 새로운 목표와 의미를 찾을 것. 골은 골을 찾는 거다. 
  • 자기 발전 
    • 뉴페 일주일에 하나는 계속 쓰자. 읽고 쓰는 습관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 좋은 영어 문장 하루에 하나베껴쓰기. 
    • 이코노미스트 / 뉴욕타임즈 헤드라인은 꼭 챙겨보기.
  •  삶
    • 술 줄이기. 일주일에 두번 맥스. 많이 마시는 건 한달에 한 번.
    • 운동 일주일에 세번.
    • 사랑한다는 이야기 많이 하기. 섭섭한 것 보다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할것. 
 

자. 화이팅.





posted by moment210
2016.01.04 09:23 분류없음

한 해동안 블로그에 안 올린 일기를 정리하면서. 쓰던 일기를 다 정리했는데 이직기와 레이오프 직후 미국회사 고용/채용 시스템 후기를 못쓴 게 아깝다. 마저 다 쓰려했는데(6개월 지나;;) 한 거 없이 휴일이 가 버렸네. 


5월 정도에 썼던 연애일기. 그래도 내게는 이게 훨씬 중요했다!

===



기독교인들이 주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과 삶의 만족감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누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배타적인 태도가 문제지만.


요즘의 연애 생활은 편안하고 따뜻하다. 이렇게 충만하고 행복한 거였구나, 라는 마음에 페북에 올라오는 다른 커플 사진도 다 예뻐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다들 나처럼 누군가를 찾을 수 있었으면, 라는 주제넘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앗차 내가 본인의 느끼는 행복을 남이 못 느낀다고 가여워하는 기독교인과 다를 거 없지 않은가! 라고 깨달았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친구들 사회에서 사라져버리는 친구들을 한심해 했는데, 요즘의 내가 그렇다. 라이프 싸이클의 다운 턴에 있을 때 내향적이 되어 가까운 사람만 만나는 성격에 샌프란시스코에 그렇게 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이 더해져서일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있고 거의 매일 그만 본다. 다른 사람들은 보기도 귀찮고, 피상적인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만나기 전부터 체할 것 같다.

그를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저녁에 돌아와 별거 아닌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고 있으면 어느새 스트레스 받던 것은 잊고 웃고 있다. 회사 레이오프가 있던 날 마침 이 아이가 여행중이었는데 어딨어 돌아와 나 5분만 꼭 안아주면 안돼, 라고 칭얼대는 마음이 간절했다. 혼자 있기 싫고 울고 싶었는데 꼭 안아주었다. 꼭 끌어안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손을 잡으면 든든하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빙긋, 웃음짓게 된다.


처음 만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을 줄 몰랐다. 이번 연애의 교훈은 잘 될 것 같지 않아도 시도해보자, 참을성있게 한번 시도해보자. 이다.

posted by moment210
2015.10.07 02:16 분류없음
요즘은 살짝 의기소침해 있다. 페이스북의 팀선택은 정말 이게 가능하나 싶을만큼 놀랄만큼 열려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있는데 팀에 자리가 없거나 그런 보직이 없다면 내가 나의 비젼을 팔면 된다. 그럼 팀을 만들어준다. 입사한 애들의 20%는 그렇게 팀을 만들어 갔다. 내가 가고 싶은 팀에 무작정 가서 왜 좋아하는지 멀 기여할 수 있는지 설득력있게 말하면 그쪽의 매니저도 내가 맘에 들면 어떻게든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멘토들은 그걸 도와주려 든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음 그럼 그팀에 누구랑 이야기해봐 라고 찾아준다. 그 도움을 받아, 나는 일을 벌이기만 하면 된다. 일벌이기 좋은 훌륭한 문화다. 
대신 가만히 있는데 주어지는 일은 없다. 팀도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나가서 찾아야하는 거다. 훌륭한 문화인데, 똑똑하게 시키는 일 해온 많은 한국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할 거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닌데, 내게 진짜 문제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우기면 되는 게 아니라 매니저든 나랑 같이 일할 사람이든 그들의 환심을 사야한다는 거다. 공식적으로는 인터뷰가 아니나 사실상 매일매일 인터뷰의 연장선. 보는 사람마다 잘 보이고 싶고, 잘 보여야한다는 압박이 있다. 처음 이야기한 팀에 그냥 조용히 갈라 그랬는데 그 팀에서 결국 거절당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인터뷰 때 너 정도면 괜찮네, 라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내가 너무 좋아서 나한테 훌떡 반하는 사람은 잘 없는데. 거기다가 백인 남자랑 업무 베프였던 적도 없고. 같이 일하기 불만은 없어도 좋아 죽었던 적도 별로 없다. 근데 이건 누가 나랑 일하고 싶어 확 땡겨줘야하는 시스템.
영어로 문서를 써야한다는 것에 쫄아서 일 잘할 자신이 없는데, 솔직히 자신감이 없는데 자신있는 척하니 가시방석이다. 조직이 정해지고 팀으로 일하게 되면 조용하게 모르는 것 인정하면서도 밀어일 거는 자신있게 강단있게 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첨보는 사람에게 나 처럼 잘난 사람 없으니 나에게 일을 다오! 라고 하기는 역시 성격에 안 맞는다. 

오늘은 한국에서 같이 일하던  l 님을 만나 이야기 하는데 막연히 미국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고(아닐 수도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 섞인 조언을 한 것 같아 뒤돌아 후회된다. 나도 오기 전엔 아무것도 개뿔 몰랐는데, 그 무렵의 나에게 손내밀기는 커녕 잘난척한 거는 아닐까. 
그러고보면 꾸준히 한단계씩 올라왔다. SKT 에서 MIT MBA 로, MBA에서 징가로, 징가에서 페이스북으로. 10년전 내게 내가 페이스북 본사에서 일할 것이라 했으면 나는 입을 떡 벌렸을 거다. 아니 5년전, 3년전 내게만 말했어도 깜짝 놀랄거다. 그렇게 한단계씩 올라올 때마다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었다.

SKT 연수 때 백명 넘는 소셜한 사람들 사이에서 움츠러들었다. 연수원에서 술을 퍼마실 때 나도 모두가 좋아하고 어울리고 싶고 유머도 잘 던지는 소탈한 사람이엇으면, 아니면 엄청 예쁘기라도 해서 다들 먼저 다가와줬으면이라고 뒤에서 짐짓 쫄아있었다. 소심한 여고생처럼.
MBA지원할 때는 나 따위가 될까 싶어 아주 쫄아있었다. 시험점수가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한번씩 불안감에 휩싸여 어쩔줄 몰라했다. K 오빠 페이스북을 보다가, 아 그 때 이 오빠가 "희상아 긍정의 힘!" 이라고 씩씩하게 외쳐주는 것에 괜히 마음이 든든하게 차올랐었지 그래서 참 고마워했었지 라고 기억이 났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당연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에 참 쫄아있었다.
MBA 와서도 소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터네셔널과는 그래도 친해질 수 있었는데, 끝까지 완전 미국애들하고는 친해지지 않았다.  
징가 와서는 몰래 근무를 더 했다 영어를 너무 못해서. 지금 페북에서 영문서 쓰는 것에 쫄아있는데 사실 징가나 델 때는 영어 이메일도 써본적도 없었다. 멍청한 소리를 하고 파워포인트에 문법 다 틀려 있는데 베시시 웃는 아시안 여자애가 된게 자존심 상해서 어디가서 코박고 죽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나, 베시시라도 웃어야지 멍청한 소리하고 얼굴까지 찌푸리는 멍청이가 될 수도 없고. 
지금은 멋있고 우와! 소리 나는 PM이고픈데 별 인상 못주는 PM이라 혼자 스트레스를 주며 의기소침한 거다. Box 의 First Employee 고, 마이크로소프트 팀장이었고, 페이스북에 스타트업을 매각했고, 넥스트도어 VP였고 너무 대단한 사람들을 보며 (아니 그런데 너 여기에 고작 PM으로 있는 거야 디렉터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는 것에 혼자 짐짓 의기소침해지는 거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도 내가 참 어이가 없네.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정말 많이 발전했는데 올챙이적 일은 까먹고 참 욕심도 많다. 일기쓰고 보니 의기소침한게 가셨다. 편하게 생각하자. 내일은 더 나은 내가 더 발전한 내가 되어있겠지.

근거없는 자신감이야 말로 창업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나는 그게 없어서 창업자는 진작에 포기. 나는 맨날 왜 이렇게 쫄까? 사실 잘 하는데. 쫄지만 말자. 나 정말 기특한데. 



posted by moment210
2015.09.10 15:18 분류없음

잊기전에 적어놓기. 


징가를 떠날 떄에는 마음이 후련했다.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한 섭섭하고 그저 후련했다. 그렇게 후련한 게 미안해서 안 들키려고 조심스럽게 페이스북 포스팅을 적었을 만큼. 굿바이 이메일도 며칠전 부터 적었는데 정말 아주 담백하게 적어야지 싶었다. 다 지우고 모바일로 5줄로. 그동안 고마웠어, '친구들과' 일할 수 있어서 기뻤어, 안녕! SKT 를 떠날 떄 작별인사는 왜 그렇게 징징거렸는지. (머 미련이 많이 남아있었으니까 그떄는.)

징가에게는 그저 고맙다. 미국 직장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것, 나를 '훈련'시켜준 것, 미국 직장답지 않게 많은 '친구들'을 만든 것, 존경할 수 있는 롤모델을 만난 것, 그리고 몇년만에 다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고 어울릴 수 있었던 것. 어찌보면 MBA보다 훨씬 호되게 더 많이 배우는 경험이었다. 나를 완전히 바꾸어논 소중한 경험이고 다시 뛰어들 경험이지만 더이상 이곳에 남을 이유는 남지 않았다.  



페이스북 시작 2주차.

첫주는 교육이나 받고 이렇게 널럴할 수가 없다. 하루에 두세시간 교육받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완벽하다. 불안한 점이라면 일을 엄청 많이 할 것 같고 잘해야할 것 같은 정도.


오래전 일기를 읽으니 징가를 시작하던 날에도 세뇌를 당했다. '우리는 게임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어. ' 라고. 그때는 동감할 수 없어 아 난 게임산업 안좋아하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여기 왜 있지라고 자괴감이 들었는데, 페이스북이 미션에 대해 말할 때는 내 뇌에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스피커로 선 Alex shultz 는 커밍아한 경험에 대해 말햇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커밍아웃을 당한 대학생 때, 세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고. 첫번째 게이를 지지하는 부류, 두번째 끝까지 싫어하는 부류, 세번째 게이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으나 자신을 알고 자신의 친구였기 때문에 의견을 바꾼 부류. 세번째 부류를 보고 단순히 몰랐던 것이었구나, 깨달았다고 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소통할 수록 세상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생긴다는 걸 믿는다고 했다. 미국 사람이 이라크 친구가 있었더라면,  이라크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열리고 더 연결된 세상을 만들고 있다. 그런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게 말을 했다. 


아 낯뜨겁게, 거대한 미션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말하다니, 나는 덩달아 내 진심을 들어내놓고 공격 받을 까봐 volnerable해진 느낌이었다. 저거 내가 2006년에 유니세프에 자기소개서 쓰면 했던 얘기인데. 부시가 이라크에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있었고, 사람 사는 사회라는 인식이 있었으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너무 나이브하게 오바하는 것 같아서 낯뜨거워지는 그렇지만 정말로 믿고 있는 미션. 그 다음 발표자도 그 다음 발표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Impact 를 끼칠거야 소통과 열린 세상 같은 단어를 하루에 스무번씩 듣고 문득 거대한 언어들이 식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믿고 있던 것들이 식상하고 고리타분한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실리콘밸리의 아주 식상한 전형적인 모델이 된 느낌이다. "테크가 세계를 구원하리라" "더 열리고 더 소통하는 세상" "다양성에 대한 존중" "더 효율적인 집단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것" "일을 잘하는 사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잘하는 자가 잘된다 잘하는 자에게 투자를" 같은 가치들을 그대로 믿는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소개를 하라 그럴 때 여행을 많이 다녔다, 뉴스 관련 스타트업을 했다, 정보의 확산과 열리고 소통하는 세상을 믿는다, 같은 걸 말하면 남들과 너무 비슷한 사람이므로 잊혀진다. 말하나마나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저 말을 하고 있는 페북 직원의 절반은 앵무새처럼 남의 말을 따라하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절반은 나와 같이 진짜로 이걸 믿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리라. 내가 식상한 인간이 되었다고 one of them 이 되었다고 어쩐지 허탈한 느낌에 빠질 것이 아니라, 잘 찾아왔다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잘 찾아왔다고 기뻐할 일이다. 근데, 여전히 기분이 이상하다. 




+ 그리고 이어서 몇개 더. 알렉스 슐츠의 스피치는 여러가지 페북의 비젼과 프로덕트에 얘기하는데 숨김없고 탁 털어놓아서 좋았다. 이를테면 중국 진출이나 악플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만큼 못하고 있다고 최대한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대응하고 있으나 문제가 많다고, 어떻게 고칠지 아이디어 있으면 들어와서 고쳐달라 했다. 실제로 그렇게 아무나 뛰어들어 고친 문제가 많은 듯했고, 대기업이라는 걸 믿을 수 없게 열려있는 조직이란 걸 느낀다. 

일주일 부트캠프하면서 안 건 모든 코드가 다 열려있고, (심지어 회사 밖에도 열린 오픈소스가 많다) 사내에서 보낸 메일은 테스크로 갈무리 되어 모두에게  노출되고 누가 멀하고 있는지 거의 모든 게 투명하게 노출된다. 문제를 발견하면 아무나 뛰어들어 고친다. 진짜로. 

느낀거 몇가지는 이번주 내로 더 적어놔야지. 안 그러면 까먹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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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1 22:44 분류없음

한국에 왔는데 불쾌지수가 높아져서 일까, 부쩍 못참고 짜증을 내고 있다. 많은 게 거슬리는데, 그만큼 내가 이 사회에서 멀어져서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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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7 16:02 분류없음

[조금 더 아름다워진 세상을 축하하며]

간혹 페북을 훑어보다 차단하는 일이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를 맺지 않는 주의라 타인의 무례함에 차단한다기보다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실망하며 차단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긴 답글을 쓰다 말고 어차피 듣지 않을 사람한테 내 시간만 아깝지, 라고 한숨을 푹 쉬고 쓰다만 답글을 지우고 조용히 차단한다. 그중 가장 자주 차단하는 논란이 ‘동성애는 죄입니다’ 류의 글이다.

오늘,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이 공식적으로 합법화 되었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을 축하하며, 숙제처럼 미루었던 글을 쓴다. 


‘동성애는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도 죄인입니다. 용서하고 치유합시다.’ 라는 발언은 내게 ‘흑인으로 태어난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 백인 기독교인들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죄를 저지른 죄인입니다. 불쌍한 흑인을 용서합시다.’ 만큼이나 역겹게 느껴진다. 흑인이기 때문에 일단 죄인이라는 선언만큼이나 단정적이고 폭력적이다.


하나님의 기본적인 창조원리에 반하는 질서가 보편적인 질서가 된 사회가 말이 되느냐는데, (<-친구분의 발언을 그대로 따옴) 동성애자는 구약 성경과 로마 역사, 고려 향가, 조선왕조실록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류 역사에 늘 존재해 왔다. 사회에 따라 핍박을 받기도 하고, 자유를 누리기도 했지만 성적 지향이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은 늘  그렇게 어디에서나 있었다. 어떤 인류의 유전자가 늘 그렇게 ‘계획’되어왔던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지으신’ 것은 왜일까.   

이성애자인 당신은 ‘빅맥을 먹고 싶은 충동’ 을 참은 것처럼 ‘동성인 친구랑 사랑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죄인이 안된 게 아닌데, 다르게 태어난 사람을 어떻게 어떤 논리로 죄인으로 몰아붙입니까. 흑인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약초를 뜯어 의료행위를 했기 때문에 마녀이고 죄인이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옆에 가기 싫다는 말처럼,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더럽고 죄인이라는 말은 다수의 횡포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동성애자인 친구는 그런 건 바뀌는 게 아니라고, 이성애자인 척하며 사는 사람들은 사회에 따가운 시선이 싫어 숨기고 억누르고 살아가는 거라고 설명하는데, 그게 참 슬프다.


'동성애자의 더러운 성행위와 그들이 역겨운 이유’를 그린 만화 (이건 좋은 반박글) 를 교육 잘 받고 외국물도 먹은 한국의 20대 여성(그러니까 나같은 프로필)이 공유해서 참으로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 글을 읽다 너무 화가 나 부들부들 떨다 동성애자 친구하고 두 시간을 피토하며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는 날 보고 웃으며 본인은 이런 오해에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했다. 나보고도 신경 끄고 무시하고 살라고.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토록 낯설고 무지한 주제라면, 조금더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몇 시간씩 이런 글을 쓴다. 


동성애자들은 문란하다고? 

통계학적으로 편향된 이야기만 듣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들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 수줍은 사람이 있고, 조용한 사람이 있고, 외향적이고 성적으로 개방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수줍고 조용한 사람은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연인을 찾기도 어렵다. 사회에 순응하는 성격의 사람은 쉽게 살기 위해 조용히 억누르고 살아간다. “내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동성애자 한두명 아는데~ “ 라며 막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 이들 중 외향적인 사람들 몇몇만을 보고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조용한 동성연애자들은 잘 눈에 띄지 않고, 연인을 찾기도 어려워한다. 그에 비해 눈에 띄는 게이는 용감하고 활기찬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며 아 게이란 성적으로 활발하고 문란한 (난 문란한 건 또 뭐가 문젠데? 라고 생각하긴하지만)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게이인 건 맞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남자친구는 사귀지 못한 내 게이 친구는 한번도 남자친구 못 사귀어본 내 여자친구와 굉장히 비슷한 성격이다. 연애 분위기가 되면 긴장해버리는 그런 성격. 


성매매나 성병의 위험에 관하여

내가 경악했던 그 만화는 게이 성매매나 성행위를 역겹게 묘사하여 혐오감을 자아냈다. 내 게이 친구는 한참을 듣더니 음, 맞아 그런 성매매 공간이 있긴 해. 라고 하더라. 그거만 보여주는 건 치사한 건 아냐? 라고 물었더니 음 그런 공간이 불결한 건 사실이라고 들었어. 그러나 이성애자 성매매에도 똑같은 공간이 있자나. 라고 한다.

성매매나 가학적 혹은 위험한 성관계는 남녀 성관계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어린 아이를 추행한다든가, 하기 싫은 상대방을 폭력으로 몰아붙인다든가, 돈으로 사람을 사는 건, 남녀 성관계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는 역겨운 인간의 한 단면이다. 동성애자라고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짓다니 그건 남성은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몰아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성애자가 방에 있었다는 사실에 나를 성적대상으로 바라봤을 거라고 기분 나빠하는데, 그들도 모든 사람 보고 흥분하는 게 아니다. 그럼 여자인 나는 세상의 (게이 빼고) 모든 남성이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기분 나쁘고 추행당했다고 느끼며 살아야하는 건가.


친구가 했던 말 중에 흥미로운 말이 있었다. 남성은 원래 여성보다 시각에 흥분하고 성욕에 쉽게 지배되자나. 시각에 흥분하고 성욕에 쉽게 지배되는 남성 둘이라고 생각해봐. 그런데 한국 같은 사회에서 사회의 음지에 있다면 건강한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고, 성매매소에 가는 게 그나마 쉬운 방안일 거라는 건 상상이 가. 수줍고 자기를 드러내기가 어려운 사람일 수록 그런 곳에 가겠지. 그건 사회의 핍박을 찾으면서 사랑할 사람을 찾아야하는 분위기에서 나온 부산물이지, 동성애자가 성매매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혐오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이 음지에서 살아야하는 데서 생긴 일이라면, 자유롭게 연애하는 곳에서 그런 일은 없어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연애를 하지. 


동성애자의 입양에서 이이의 권리를 생각하라고? 

아이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환경은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이혼하는 부모도 그렇게 많은데,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나, 집에 거의 없는 부모보다 사랑하고 따뜻하고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부모가 아이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건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동성애자도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 무수히 많은 이성애자의 결혼처럼 경제적 수준이 나랑 맞고 외모가 내 수준과 맞고 부모님이 경제적 여력이 있고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해야하니 하는 그런 결혼이 아니라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결혼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페북 포스팅 말마따나 사랑이 승리했다.

오늘의 샌프란시스코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나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posted by moment210
2015.06.25 18:35 분류없음

쓰고 나면 맴돌던 생각이 정리되고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를 해도 정리가 되지만 적지 않으면 휘발성이 강해서. 쓴 글은 몇년이고 기억이 난다. 블로그에 올려논 사진처럼.


오늘 보는 인터뷰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하니, 라고 물어보는데 잘 정리된 생각이 머리에 들어있어서 자신있게 얘기했고 동감해줬다. http://embracetheworld.tistory.com/165 머 어제 예상 질문들 흝어보면서 음 재미없는 프로젝트를 해야할 때 어떡해야할지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데, 하고 찾아봐서 그런거지만. xx 했던 경험을 이야기를 해봐라, 라는 behavior interview는 정말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준비만 하면 순전히 꾸며낼 수 있음. 거기다 말발이 중요한데 영어로 하면 도대체 잘할 수가 없다. 그래도 저 질문은 잘 생각이 정리 되어있으면 좀 낫었다.


어쨌든 오늘 파이날 인터뷰는 오퍼 받았다. 만세. 

인터뷰 5개중 4개가 PM 인터뷰라 그럴때부터 나 프로덕트 질문들은 잘할 수 있는데, 이러고 예감이 좋았는데 전화받고 얼굴에 확 웃음이 번졌다. 

일년을 끌어온 숙제를 끝냈더니 명치에 얹혀있던 체증이 내려간 듯. 




posted by moment210
2015.06.06 08:40 분류없음

I have learned that I never really knew what to say to others in need. I think I got this all wrong before; I tried to assure people that it would be okay, thinking that hope was the most comforting thing I could offer. A friend of mine with late-stage cancer told me that the worst thing people could say to him was “It is going to be okay.” That voice in his head would scream, How do you know it is going to be okay? Do you not understand that I might die? I learned this past month what he was trying to teach me. Real empathy is sometimes not insisting that it will be okay but acknowledging that it is not. When people say to me, “You and your children will find happiness again,” my heart tells me, Yes, I believe that, but I know I will never feel pure joy again. Those who have said, “You will find a new normal, but it will never be as good” comfort me more because they know and speak the truth. Even a simple “How are you?”—almost always asked with the best of intentions—is better replaced with “How are you today?” When I am asked “How are you?” I stop myself from shouting, My husband died a month ago, how do you think I am? When I hear “How are you today?” I realize the person knows that the best I can do right now is to get through each day.


I have learned that resilience can be learned. Adam M. Grant taught me that three things are critical to resilience and that I can work on all three. Personalization—realizing it is not my fault. He told me to ban the word “sorry.” To tell myself over and over, This is not my fault.


For me, starting the transition back to work has been a savior, a chance to feel useful and connected. But I quickly discovered that even those connections had changed. Many of my co-workers had a look of fear in their eyes as I approached. I knew why—they wanted to help but weren’t sure how. Should I mention it? Should I not mention it? If I mention it, what the hell do I say? I realized that to restore that closeness with my colleagues that has always been so important to me, I needed to let them in. And that meant being more open and vulnerable than I ever wanted to be. I told those I work with most closely that they could ask me their honest questions and I would answer. I also said it was okay for them to talk about how they felt. One colleague admitted she’d been driving by my house frequently, not sure if she should come in. Another said he was paralyzed when I was around, worried he might say the wrong thing. Speaking openly replaced the fear of doing and saying the wrong thing. One of my favorite cartoons of all time has an elephant in a room answering the phone, saying, “It’s the elephant.” Once I addressed the elephant, we were able to kick him out of the room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55617891025177&set=a.404308695176.365039.717545176&type=1 


쉐릴 샌드버그의 글을 보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힘들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몸이 먼저 반응해 눈물이 난다. "다 괜찮아 질거야"라는 말에는 이해받지 못함에 더 지치고 무너져내렸다. "예전같을 순 없지만, 나름 적응하고 괜찮아질거야" 가 낫다. 절대 예전 같아질 수 없고, 설사 가능하다하더라도 믿겨지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그게 더 마음이 아프다. 지금 세상이 무너진 내게 다 괜찮아 질 거라니, 그처럼 무지하고 순진한 발언이 어딨는가.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 싫어지고 불편하다.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되뇌이는 마음. 다 내 잘못이다.


일로 돌아가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부분. 털어놓고 나의 약한 부분을 보여주고 기대는 자세는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 쉐릴 샌드버그 특유의 '나댐'이 한국 사람으로서는 불편한 부분도 있었는데, 린인도 모두가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가치가 있으나 엘리트 여성을 위한 운동이라는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는데, 저렇게 자신이 느낀 것들을 '과도하게' 공유하는 것은 용감하고 가치있는 행동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경험을 모두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때 일에서 나에게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 왜 힘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조금은 생각해 보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사회 전체로 볼때는 쉐릴의 '과도한 경험 공유' 가 득이 된달까. 모두 같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니. 30일도 안되서 가장 아픈 부분을 드러내다니 일이 있은지 며칠 안되어 글을 쓸 때도 놀랐는데 참 대단한 성격이다 싶다. 나는 수년이 지나도 그 이야기를 하라 그러면 무너질 것 같은데.


30년은 현명해진 느낌이라고 쉐릴 샌드버그가 그러는데 훨씬 깊이가 느껴진다. 나도 조금은 나아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moment210
2015.05.11 15:09 분류없음

글 좀 쓰고 살자. 생각 좀 하고 살자.


글쓰는 습관을 잃어서일까, 시간이 있어도 글을 쓰게 되지 않는다.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하기가 겁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리쿠르팅 근황.

지난 10월 쯤에 확 알아보고, 올 3월 정도에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포메이션 토크는 꽤 했는데 공들여 인터뷰한 건 마지막 두개 정도. 구글PM 은 충분히 테크니컬하지 않다고 떨어졌고 Change.org PM은 맞는 자리가 없다고 떨어졌다. 구글은 인터뷰 가기 전날부터 테크니컬 인터뷰 보기 싫어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난 테크니컬한 PM자리 싫은데, 인터뷰가 문제가 아니라 백앤드 서버시스템 디자인하고 코드 보는 직업은 정말 하기 싫은데 이걸 왜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스트레스 받았다. 그래도 왜 했냐고 물으면, 친구가 추천해주겠다고 해서 레쥬메 보냈더니 인터뷰 요청이 왔고, 몇번째 인터뷰를 통과하고 있는데 이 좋은 기회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금 징가는 싫어죽겠고, 다른 자리 알아봐야하는데 모든 자리에 나름의 거절할 이유를 찾고 있는 내가 답답했고,(남자친구 고르기에 한창 까다로웠던 것과 똑같다) 어찌됐든 진행시켜 인터뷰 연습이라도 하고 오퍼라도 받고 고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PM 인터뷰는 PM 네다섯명과 보고 엔지니어가 테크니컬 능력 확인하는 인터뷰를 보는데 테크니컬 인터뷰는 예상 질문을 보니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없었다. 안그래도 요즘 힘들고 자신감이 없는 와중에, '발리면' 푹 꺾여버릴 것 같아 인터뷰 보기 전 주말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부한다고 어디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공부도 진척이 없었다. 아니다 다를까, 테크니컬 인터뷰는 세상에 5분만에 신나게 발렸지만 다행히 피엠 인터뷰에서는 모두 좋은 피드백을 받아 끝난 후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인터뷰 네개 를 보고 잘하면 두개를 더 본뎄는데 두개 더 보았다.) 내가 충분히 엔지니어적이지 않는 게 구글 피엠이 못 될 것 같고 또 하기 싫은 이유였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기대한 피드백을 받으니 되려 마음이 놓였다. 어차피 가서 이런 마음에 일하기 힘들었을 텐데 회사 측에서도 알아보고 잘라줘서 다행, 안심 이런 마음이었달까. 프로덕트 보는 눈은 있다는 평가를 받은 걸로 충분히 기뻤다.


Change 는 정말 너무 가고 싶었는데 낙담했다.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한 후 백여개 회사를 검토한 후 처음으로 굉장히 가고 싶은 회사였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비지니스적으로 똑똑하게 일을 처리하는' '잘나가는' '샌프란시스코' 회사였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소개 글도 썼다. (http://newspeppermint.com/2015/03/22/changedotorg/) 인터뷰는 나쁘지 않았는데, 몇주를 질질 끌더니 Growth PM 은 나보다 더 높은 경력의 디렉터를 뽑기로 했고, PM 은 프로파일 일을 한적이 있는 링크드인이나 데이팅 싸이트 PM 을 채용하기로 했단다. 크기가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완전히 맞는 핏을 찾는구나, 내가 똑똑한 거나 회사가 좋은 것과 상관없이 나의 경력이 딱 맞아 떨어지는 운이 필요하구나, 를 느꼈다. 


많이 낙담했는데 단순히 떨어져서라기 보다는 이렇게 가고 싶은 자리를 또 찾을 수 있을까, 같은 절망감이었다. 이전에 좋아 어쩔 줄 몰라하며 만나던 남자친구와 서너달이 지난 후에 심드렁하게 짜증만 부리다가 내가 질려 헤어지자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헤어지자 한 주제에 몇달을 엄청 힘들어했는데, 착한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한 미안함과 더불어 나는 정말 아무도 못좋아하는구나 난 안되는구나 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같은 절망감이 있었다. 직업도 그렇다. 그렇게 가고 싶은 자리를 못찾겠는데 현회사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고 간신히 찾은 가고 싶은 자리는 (생각하면 신나서 두근대는 직업) 나를 안원하는구나, 난 안되는구나, 같은 거. 


키 테이크어웨이는 스타트업은 더더욱 폭넓게 계속 알아보며 필요해질 때 조인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더 공을 들여 알아봐야한다는 거다. 








posted by moment210
2015.03.23 14:57 분류없음

요즘은 큰일이다. 수렁에 빠졌는데 못나간지 오래되서 의욕없는게 버릇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의욕없고 뺀질대면서도 내 스스로 괜찮으면 큰 상관없는데 이러고 있는 내가 싫어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있다. 이번 주말에는 몇가지 일 처리를 하고 정신차리려했는데 하나도 못하는 바람에 다음주는 상황이 더 악화되게 생겼다. 아, 괴롭다. 고등학교 시절 주말에 집에가서 이거 다 공부해야지 하고 무거운 책을 다 들고 기숙사 나와 집에 왔는데 하나도 안하고 그 무거운 책들을 가방에 다시 넣으며 우울해지는 일요일 밤, 월요일 아침 같은 느낌. 아아- 이 짓을 반평생을 해왔다니. 한동안 잊고 있었다. 


내일 아침엔 인터뷰가 있는데 어차피 될 것 같지도 않고 자신도 없고 그다지 하고 싶지도 않은데 보는 인터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나와야 좀 돌파구가 생길거 같은데 문제는 요즘 너무 의욕이 꺾이는 바람에 일하고 머리쓰는 것 자체가 싫어지고 있다. 돌대가리가 된 기분이다. 회사 일은 물론 뉴스페퍼민트나 친구들이 일얘기 토론할려고 할때도 다른 얘기하면 안돼? 라고 말을 돌려버리고 있다. 생각하기가 싫다. 챌린징한 질문을 하면 멍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해야하는 일은 쌓여가는데, 미루고 있는 기분이 편치 않아 마음이 불안하고 긴장되는데, 그저 도망가고 싶어서 꿋꿋하게 만화보고 게임하고 미드를 보고 요리해먹고 치웠다. 놀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일 자체가 싫은데 똑똑하고 일 잘하기로 유명한 회사랑 인터뷰를 해야하다니 긴장되고 자신없고 의욕도 없어서 그냥 울고 싶다. 이러다 다음주는 더 자기 혐오에 빠져있겠다.


누가 동앗줄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활기차고 일 욕심많고 정신없이 바쁘고 건강한 나로 돌아가고 싶다. 확 다 관두고 두달 정도 도망가면 다시 의욕이 생길 것도 같은데. 어쨌든 비자 이슈 때문에 그렇게도 못한다.


아- 돌겠네. 그나마 남자친구를 보면 긴장이 풀어진다. 근데 건강하고 즐거운 사랑할 만한 행복한 나를 보여주고 싶은데, 이런 나같지 않은 초라한 나를 속속들이 드러내기가 싫어 속얘기를 안하고 있다. 

posted by moment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