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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7 16:02 분류없음

[조금 더 아름다워진 세상을 축하하며]

간혹 페북을 훑어보다 차단하는 일이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를 맺지 않는 주의라 타인의 무례함에 차단한다기보다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나 실망하며 차단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 슬프다. 긴 답글을 쓰다 말고 어차피 듣지 않을 사람한테 내 시간만 아깝지, 라고 한숨을 푹 쉬고 쓰다만 답글을 지우고 조용히 차단한다. 그중 가장 자주 차단하는 논란이 ‘동성애는 죄입니다’ 류의 글이다.

오늘,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이 공식적으로 합법화 되었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며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조금 더 행복한 세상을 축하하며, 숙제처럼 미루었던 글을 쓴다. 


‘동성애는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도 죄인입니다. 용서하고 치유합시다.’ 라는 발언은 내게 ‘흑인으로 태어난 것은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 백인 기독교인들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죄를 저지른 죄인입니다. 불쌍한 흑인을 용서합시다.’ 만큼이나 역겹게 느껴진다. 흑인이기 때문에 일단 죄인이라는 선언만큼이나 단정적이고 폭력적이다.


하나님의 기본적인 창조원리에 반하는 질서가 보편적인 질서가 된 사회가 말이 되느냐는데, (<-친구분의 발언을 그대로 따옴) 동성애자는 구약 성경과 로마 역사, 고려 향가, 조선왕조실록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류 역사에 늘 존재해 왔다. 사회에 따라 핍박을 받기도 하고, 자유를 누리기도 했지만 성적 지향이 다르게 태어난 사람들은 늘  그렇게 어디에서나 있었다. 어떤 인류의 유전자가 늘 그렇게 ‘계획’되어왔던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지으신’ 것은 왜일까.   

이성애자인 당신은 ‘빅맥을 먹고 싶은 충동’ 을 참은 것처럼 ‘동성인 친구랑 사랑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죄인이 안된 게 아닌데, 다르게 태어난 사람을 어떻게 어떤 논리로 죄인으로 몰아붙입니까. 흑인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약초를 뜯어 의료행위를 했기 때문에 마녀이고 죄인이고, 장애인이기 때문에 옆에 가기 싫다는 말처럼,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더럽고 죄인이라는 말은 다수의 횡포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동성애자인 친구는 그런 건 바뀌는 게 아니라고, 이성애자인 척하며 사는 사람들은 사회에 따가운 시선이 싫어 숨기고 억누르고 살아가는 거라고 설명하는데, 그게 참 슬프다.


'동성애자의 더러운 성행위와 그들이 역겨운 이유’를 그린 만화 (이건 좋은 반박글) 를 교육 잘 받고 외국물도 먹은 한국의 20대 여성(그러니까 나같은 프로필)이 공유해서 참으로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 글을 읽다 너무 화가 나 부들부들 떨다 동성애자 친구하고 두 시간을 피토하며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는 날 보고 웃으며 본인은 이런 오해에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했다. 나보고도 신경 끄고 무시하고 살라고.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토록 낯설고 무지한 주제라면, 조금더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몇 시간씩 이런 글을 쓴다. 


동성애자들은 문란하다고? 

통계학적으로 편향된 이야기만 듣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성애자들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다. 수줍은 사람이 있고, 조용한 사람이 있고, 외향적이고 성적으로 개방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수줍고 조용한 사람은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연인을 찾기도 어렵다. 사회에 순응하는 성격의 사람은 쉽게 살기 위해 조용히 억누르고 살아간다. “내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동성애자 한두명 아는데~ “ 라며 막말을 하는 사람은 사실 이들 중 외향적인 사람들 몇몇만을 보고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조용한 동성연애자들은 잘 눈에 띄지 않고, 연인을 찾기도 어려워한다. 그에 비해 눈에 띄는 게이는 용감하고 활기찬 사람들이다. 그들을 보며 아 게이란 성적으로 활발하고 문란한 (난 문란한 건 또 뭐가 문젠데? 라고 생각하긴하지만)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게이인 건 맞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남자친구는 사귀지 못한 내 게이 친구는 한번도 남자친구 못 사귀어본 내 여자친구와 굉장히 비슷한 성격이다. 연애 분위기가 되면 긴장해버리는 그런 성격. 


성매매나 성병의 위험에 관하여

내가 경악했던 그 만화는 게이 성매매나 성행위를 역겹게 묘사하여 혐오감을 자아냈다. 내 게이 친구는 한참을 듣더니 음, 맞아 그런 성매매 공간이 있긴 해. 라고 하더라. 그거만 보여주는 건 치사한 건 아냐? 라고 물었더니 음 그런 공간이 불결한 건 사실이라고 들었어. 그러나 이성애자 성매매에도 똑같은 공간이 있자나. 라고 한다.

성매매나 가학적 혹은 위험한 성관계는 남녀 성관계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어린 아이를 추행한다든가, 하기 싫은 상대방을 폭력으로 몰아붙인다든가, 돈으로 사람을 사는 건, 남녀 성관계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는 역겨운 인간의 한 단면이다. 동성애자라고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짓다니 그건 남성은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몰아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성애자가 방에 있었다는 사실에 나를 성적대상으로 바라봤을 거라고 기분 나빠하는데, 그들도 모든 사람 보고 흥분하는 게 아니다. 그럼 여자인 나는 세상의 (게이 빼고) 모든 남성이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기분 나쁘고 추행당했다고 느끼며 살아야하는 건가.


친구가 했던 말 중에 흥미로운 말이 있었다. 남성은 원래 여성보다 시각에 흥분하고 성욕에 쉽게 지배되자나. 시각에 흥분하고 성욕에 쉽게 지배되는 남성 둘이라고 생각해봐. 그런데 한국 같은 사회에서 사회의 음지에 있다면 건강한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고, 성매매소에 가는 게 그나마 쉬운 방안일 거라는 건 상상이 가. 수줍고 자기를 드러내기가 어려운 사람일 수록 그런 곳에 가겠지. 그건 사회의 핍박을 찾으면서 사랑할 사람을 찾아야하는 분위기에서 나온 부산물이지, 동성애자가 성매매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혐오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이 음지에서 살아야하는 데서 생긴 일이라면, 자유롭게 연애하는 곳에서 그런 일은 없어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연애를 하지. 


동성애자의 입양에서 이이의 권리를 생각하라고? 

아이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환경은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부모라고 생각한다. 이혼하는 부모도 그렇게 많은데,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나, 집에 거의 없는 부모보다 사랑하고 따뜻하고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부모가 아이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건 나는 이해가 안 간다. 


동성애자도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 무수히 많은 이성애자의 결혼처럼 경제적 수준이 나랑 맞고 외모가 내 수준과 맞고 부모님이 경제적 여력이 있고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해야하니 하는 그런 결혼이 아니라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결혼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페북 포스팅 말마따나 사랑이 승리했다.

오늘의 샌프란시스코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나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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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5.06.25 18:35 분류없음

쓰고 나면 맴돌던 생각이 정리되고 기억에 남는다. 이야기를 해도 정리가 되지만 적지 않으면 휘발성이 강해서. 쓴 글은 몇년이고 기억이 난다. 블로그에 올려논 사진처럼.


오늘 보는 인터뷰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받았을 때는 어떻게 하니, 라고 물어보는데 잘 정리된 생각이 머리에 들어있어서 자신있게 얘기했고 동감해줬다. http://embracetheworld.tistory.com/165 머 어제 예상 질문들 흝어보면서 음 재미없는 프로젝트를 해야할 때 어떡해야할지 블로그에 쓴 적이 있는데, 하고 찾아봐서 그런거지만. xx 했던 경험을 이야기를 해봐라, 라는 behavior interview는 정말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준비만 하면 순전히 꾸며낼 수 있음. 거기다 말발이 중요한데 영어로 하면 도대체 잘할 수가 없다. 그래도 저 질문은 잘 생각이 정리 되어있으면 좀 낫었다.


어쨌든 오늘 파이날 인터뷰는 오퍼 받았다. 만세. 

인터뷰 5개중 4개가 PM 인터뷰라 그럴때부터 나 프로덕트 질문들은 잘할 수 있는데, 이러고 예감이 좋았는데 전화받고 얼굴에 확 웃음이 번졌다. 

일년을 끌어온 숙제를 끝냈더니 명치에 얹혀있던 체증이 내려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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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5.06.06 08:40 분류없음

I have learned that I never really knew what to say to others in need. I think I got this all wrong before; I tried to assure people that it would be okay, thinking that hope was the most comforting thing I could offer. A friend of mine with late-stage cancer told me that the worst thing people could say to him was “It is going to be okay.” That voice in his head would scream, How do you know it is going to be okay? Do you not understand that I might die? I learned this past month what he was trying to teach me. Real empathy is sometimes not insisting that it will be okay but acknowledging that it is not. When people say to me, “You and your children will find happiness again,” my heart tells me, Yes, I believe that, but I know I will never feel pure joy again. Those who have said, “You will find a new normal, but it will never be as good” comfort me more because they know and speak the truth. Even a simple “How are you?”—almost always asked with the best of intentions—is better replaced with “How are you today?” When I am asked “How are you?” I stop myself from shouting, My husband died a month ago, how do you think I am? When I hear “How are you today?” I realize the person knows that the best I can do right now is to get through each day.


I have learned that resilience can be learned. Adam M. Grant taught me that three things are critical to resilience and that I can work on all three. Personalization—realizing it is not my fault. He told me to ban the word “sorry.” To tell myself over and over, This is not my fault.


For me, starting the transition back to work has been a savior, a chance to feel useful and connected. But I quickly discovered that even those connections had changed. Many of my co-workers had a look of fear in their eyes as I approached. I knew why—they wanted to help but weren’t sure how. Should I mention it? Should I not mention it? If I mention it, what the hell do I say? I realized that to restore that closeness with my colleagues that has always been so important to me, I needed to let them in. And that meant being more open and vulnerable than I ever wanted to be. I told those I work with most closely that they could ask me their honest questions and I would answer. I also said it was okay for them to talk about how they felt. One colleague admitted she’d been driving by my house frequently, not sure if she should come in. Another said he was paralyzed when I was around, worried he might say the wrong thing. Speaking openly replaced the fear of doing and saying the wrong thing. One of my favorite cartoons of all time has an elephant in a room answering the phone, saying, “It’s the elephant.” Once I addressed the elephant, we were able to kick him out of the room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55617891025177&set=a.404308695176.365039.717545176&type=1 


쉐릴 샌드버그의 글을 보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힘들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몸이 먼저 반응해 눈물이 난다. "다 괜찮아 질거야"라는 말에는 이해받지 못함에 더 지치고 무너져내렸다. "예전같을 순 없지만, 나름 적응하고 괜찮아질거야" 가 낫다. 절대 예전 같아질 수 없고, 설사 가능하다하더라도 믿겨지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그게 더 마음이 아프다. 지금 세상이 무너진 내게 다 괜찮아 질 거라니, 그처럼 무지하고 순진한 발언이 어딨는가. 한없이 긍정적인 사람이 싫어지고 불편하다. 


'내 잘못이 아니야' 라고 되뇌이는 마음. 다 내 잘못이다.


일로 돌아가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는 부분. 털어놓고 나의 약한 부분을 보여주고 기대는 자세는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 쉐릴 샌드버그 특유의 '나댐'이 한국 사람으로서는 불편한 부분도 있었는데, 린인도 모두가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가치가 있으나 엘리트 여성을 위한 운동이라는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는데, 저렇게 자신이 느낀 것들을 '과도하게' 공유하는 것은 용감하고 가치있는 행동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경험을 모두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때 일에서 나에게 힘이 되었던 사람들이 왜 힘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야하는지, 조금은 생각해 보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사회 전체로 볼때는 쉐릴의 '과도한 경험 공유' 가 득이 된달까. 모두 같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니. 30일도 안되서 가장 아픈 부분을 드러내다니 일이 있은지 며칠 안되어 글을 쓸 때도 놀랐는데 참 대단한 성격이다 싶다. 나는 수년이 지나도 그 이야기를 하라 그러면 무너질 것 같은데.


30년은 현명해진 느낌이라고 쉐릴 샌드버그가 그러는데 훨씬 깊이가 느껴진다. 나도 조금은 나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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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2015.05.11 15:09 분류없음

글 좀 쓰고 살자. 생각 좀 하고 살자.


글쓰는 습관을 잃어서일까, 시간이 있어도 글을 쓰게 되지 않는다.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하기가 겁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리쿠르팅 근황.

지난 10월 쯤에 확 알아보고, 올 3월 정도에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포메이션 토크는 꽤 했는데 공들여 인터뷰한 건 마지막 두개 정도. 구글PM 은 충분히 테크니컬하지 않다고 떨어졌고 Change.org PM은 맞는 자리가 없다고 떨어졌다. 구글은 인터뷰 가기 전날부터 테크니컬 인터뷰 보기 싫어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난 테크니컬한 PM자리 싫은데, 인터뷰가 문제가 아니라 백앤드 서버시스템 디자인하고 코드 보는 직업은 정말 하기 싫은데 이걸 왜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스트레스 받았다. 그래도 왜 했냐고 물으면, 친구가 추천해주겠다고 해서 레쥬메 보냈더니 인터뷰 요청이 왔고, 몇번째 인터뷰를 통과하고 있는데 이 좋은 기회를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금 징가는 싫어죽겠고, 다른 자리 알아봐야하는데 모든 자리에 나름의 거절할 이유를 찾고 있는 내가 답답했고,(남자친구 고르기에 한창 까다로웠던 것과 똑같다) 어찌됐든 진행시켜 인터뷰 연습이라도 하고 오퍼라도 받고 고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PM 인터뷰는 PM 네다섯명과 보고 엔지니어가 테크니컬 능력 확인하는 인터뷰를 보는데 테크니컬 인터뷰는 예상 질문을 보니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없었다. 안그래도 요즘 힘들고 자신감이 없는 와중에, '발리면' 푹 꺾여버릴 것 같아 인터뷰 보기 전 주말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 공부한다고 어디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공부도 진척이 없었다. 아니다 다를까, 테크니컬 인터뷰는 세상에 5분만에 신나게 발렸지만 다행히 피엠 인터뷰에서는 모두 좋은 피드백을 받아 끝난 후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인터뷰 네개 를 보고 잘하면 두개를 더 본뎄는데 두개 더 보았다.) 내가 충분히 엔지니어적이지 않는 게 구글 피엠이 못 될 것 같고 또 하기 싫은 이유였고 아니나 다를까 내가 기대한 피드백을 받으니 되려 마음이 놓였다. 어차피 가서 이런 마음에 일하기 힘들었을 텐데 회사 측에서도 알아보고 잘라줘서 다행, 안심 이런 마음이었달까. 프로덕트 보는 눈은 있다는 평가를 받은 걸로 충분히 기뻤다.


Change 는 정말 너무 가고 싶었는데 낙담했다. 새로운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한 후 백여개 회사를 검토한 후 처음으로 굉장히 가고 싶은 회사였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은데' '비지니스적으로 똑똑하게 일을 처리하는' '잘나가는' '샌프란시스코' 회사였다. 인터뷰 준비하면서 소개 글도 썼다. (http://newspeppermint.com/2015/03/22/changedotorg/) 인터뷰는 나쁘지 않았는데, 몇주를 질질 끌더니 Growth PM 은 나보다 더 높은 경력의 디렉터를 뽑기로 했고, PM 은 프로파일 일을 한적이 있는 링크드인이나 데이팅 싸이트 PM 을 채용하기로 했단다. 크기가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완전히 맞는 핏을 찾는구나, 내가 똑똑한 거나 회사가 좋은 것과 상관없이 나의 경력이 딱 맞아 떨어지는 운이 필요하구나, 를 느꼈다. 


많이 낙담했는데 단순히 떨어져서라기 보다는 이렇게 가고 싶은 자리를 또 찾을 수 있을까, 같은 절망감이었다. 이전에 좋아 어쩔 줄 몰라하며 만나던 남자친구와 서너달이 지난 후에 심드렁하게 짜증만 부리다가 내가 질려 헤어지자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헤어지자 한 주제에 몇달을 엄청 힘들어했는데, 착한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한 미안함과 더불어 나는 정말 아무도 못좋아하는구나 난 안되는구나 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같은 절망감이 있었다. 직업도 그렇다. 그렇게 가고 싶은 자리를 못찾겠는데 현회사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고 간신히 찾은 가고 싶은 자리는 (생각하면 신나서 두근대는 직업) 나를 안원하는구나, 난 안되는구나, 같은 거. 


키 테이크어웨이는 스타트업은 더더욱 폭넓게 계속 알아보며 필요해질 때 조인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더 공을 들여 알아봐야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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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