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1. 14:18
MBA Life in Sloan
얼마전에 기계학과 석사인 룸메의 친구가 주최한 저녁에 놀러갔다. (랜덤한 파티라는 얘기) 포트락 파티에 김밥이 놓여있길래, 우왓 여기 한국인 어딨어, 누가 만든거야? 라고 했더니 왠 시커먼 외국 남자애 둘이 자기네가 만들었단다. 엥.
어쩌구저쩌구 얘기를 시작하니 이 친구는 뉴저지 출신의 백인 미국인인데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공부도 하고 일도 했다고. 이화여대에 가서 페미니즘을 공부했단다. 헐. (덩치 완전 크고 빵집이나 목공소 운영할 백인 아저씨 스타일) 일은 멀했냐고 물으니 영어 가르치는 스타트업을 했단다.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려던 참에,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 나라에서 영어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게 참 놀라웠단다. 평생 영어쓸일이 없는 기업에 취직하는 대학생들도, 단순히 토익 시험 점수가 사람을 자르는 잣대가 되기 때문에 목매달고 공부하는게 놀라웠고 부당하다고 생각햇고 더구나 네이티브 스피커와 얘기할 기회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성공'의 기회를 잃고 있는게 눈에 보여 안타까웠단다. 영어가 한국에서 계급의 장벽을 낳고, 언어는 '반드시 경험해야지만 발전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부의 세습을 공식적으로 제도화 하는 도구가 되고있는게 그 친구 눈에도 보였나보다. 더구나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들이 너무나 생각없고 (한국여자들이랑 잘 생각으로 놀러온) 질 낮은 미국애들이 많아서 창피했다고. 공부나 비지니스 목적으로 머물고 있는 '질높은' 단기거주 미국인과 네이티브 스피커를 만날 기회가 없는 가난한 학생들을 연결해주는 사회적 기업을 했었고, 지금도 엔터프리너쉽에 관심이 많아 VC에서 일하다가, MIT로 왔다고 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
아프리카에서 MPesa 라고 해서 휴대폰으로 송금을 하는 서비스가 대박을 쳤다. 케냐의 경우 GDP의 30%가 이 MPesa 서비스를 통해 거래된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휴대폰은 보급됬어도 은행지점은 텔레콤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서비스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1&aid=0004783302
http://www.gatesfoundation.org/financialservicesforthepoor/Documents/mobile-money.pdf
MPesa는 철저히 For-Profit 사업이다. 이윤을 내기 위해 하는 서비스고 (당연히)고객에게 수수료를 받는다. 그러나, 거시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원활한 화폐의 공급이 얼마나 경제활성화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주구장창 반복하고 반복한다. 휴대폰 송금이라는 '모바일 머니,' 새로운 화폐의 탄생으로 원활하게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거래량이 증가하고, 직업이 만들어지고, 경제가 활성화 되기 시작한다. 이번학기에는 모바일머니로 상점들에서 결제를 할 수 있게 하고, 상점들에게 마케팅 툴을 제공하는 http://kopokopo.com/ 라는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http://kopokopo.com/?page_id=33 요즘은 거기서 일하는 미국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이곳의 자생적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이 대단하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하나더.
얼마전에는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자기 인생에 아버지가 끼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판사인 아버지가 '세상에 범죄는 있어도 그 뒷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감가지 않는 범죄자는 없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된다' 라는 이야기를 해줬던게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다고. 어릴적에 들은 얘기인데도 두고두고 인생의 지침이 된다고 했다. 어떤 아버지/어머니가 되어야 되는가 많은 생각을 했다.
W군 말대로, 보스턴에 엘리트 의식에 쩔은 "머리에 똥만 찬" 사람들도 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inspiring 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인생을 자꾸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보스턴이라는 동네가 좋은 건 educated 된 커뮤니티 이고,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다.
한국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지만 서울에서 나는 한정된 커뮤니티 안에서 살고 있었다. 유학을 오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의 다양한 측면들을 고민해 보게 된다. 그래서,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