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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쥬메/ 커버레터를 쓰면서 예전 에세이를 보다 지금도 재미있어서 올려본다.

나의 프로페셔널 라이프를 도는 두가지의 theme 은 처음 일을 시작하던 8년전부터 지금까지 new world (international)과 New technology 이다. 늘 새로운 걸 경험한다는게 신이났고, 그 theme 을 일관된 intelectual curiosity 등의 말로 포장햇다. 잠깐 외도를 해도, 내가 얼마나 떠도는 걸 좋아하는지, 세상을 바꾸는 consumer technology 가 얼마나 재밌는지 깨달으며 돌아온다. 



2011년에 가장먼저 끄적거리던 에세이 시작본. 결국엔 통째로 다바뀌고 정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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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say “I’m happy” in Spanish, Jihab properly 입는법, 라오스 산골 소수부족 청년의 favorite pop song. All these, 지난 7년간 내가 알게된 소중한 재산이다. What matter most to me is meeting different culture, more specifically, different people.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남으로서 새로운 view 세상을 보고, 세상의 많은 측면들을 이해하게 되는 . 그게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다. And that’s why I keep on moving, keep on traveling, and keep on learning.

내가 처음으로 내가 번돈으로 my life adventure 시작하던 18살때부터 25살이 지금까지, 나는 30개국을 heavy하게 여행했고, 3 대륙에서 학생생활을 했다. 그리고, on the road, 만난 사람들이 rubbing off 하면서 나를 변화시켰다.

철들어, 난생처음 외국에서 살게 되어 긴장된 마음으로 미국 대학 기숙사 내방에 발을 내딛었을 나는 지방제거 수술을 해서 220pound, 17 single mom Puerto Rican roommate 만났다. 얼마나 open 성격을 가지고 있던 간에, 어쨌든 나는 보수적인 집에서 엄격하게 자랐다. 친구하고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 지를 몰랐다. 음악을 크게 틀어도 조용히 해달라는 얘기조차 하기 어려웠다. I was intimidated. 그러나, 천천히 이친구를 알게 되면서 이친구는 의외로 속이 깊고 친절했다. Minority 상처를 받아왔고, 그래서 minority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외국애들한테 영어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했고, 나를 도와주었다. 그때 나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미국사회에 대해 배우고, 느꼈다. 한민족을 자랑하는 한국에 비해 variety 껴안는 미국식 태도가 business에도 반영되고, 그게 미국의 힘이구나 생각했다.

남자들만 30명이 멀뚱히 서있던 모로코 어느 산골 시골마을의 bus terminal 기억난다. 구경하기 어려운 젊은 동양여자를 모두 뚫어져라 쳐다만 보고있다. 내가 신기한건 알겠는데, 무섭다. 며칠전 친구가 길거리에서 가슴잡히는 성추행 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젠장 덜컥 겁이 난다. 그때, 밖에 뛰어나온 꼬마가 신나서 내머리를 당긴다. 녀석하고 장난을 치고 있자니, 할머니가 나온다. 몸짓 발짓 얘기하다가 내가 가방에서 꺼낸 두건을 어떻게 쓰냐고 어설프게 쓰는 흉내를 내니 결국엔 가르치다 말고 답답한지 끌고가서 입혀준다. 어느새 어디있었는지 여자들이 우르르 나를 둘러싸고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하고, 저멀리 있는 남자들도 이제는 제대로 jihab 차려입은 나를 보며 웃는 눈이 부드러워졌다. 엄격한 남녀구분이 있는 문화에서 나시티를 입은 외국인이 그들에게 어떻게 판단되고 비치는지 나는 이제 안다. 다른 모르는 존재이기에, 외국인여성에게 쉽게 성추행을 하게되는 사회적 맥락을 이해한. 그건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기 보다, 어떻게 다른 문화속의 사람들에게 다가가, 모르는 사회의 구조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지를 가르켜준 계기였다. 아줌마 할머니들은 결국 말도 안통하는 내게 차도 주고 과자도 주고, 야간버스에서 추워하는 나를 위해 두꺼운 잠바도 벗어 억지로 입혀 주기도했다. 따뜻한 사람들이다.

일에서도 똑같다. 나는 Telecom 입사한 줄곧 Convergence & Internet Office에서 다른 산업과의 Converged 신규 business develop하고 키우는 일을 해왔다. 이른바 혁신적이라고 하는 IT industry 배경을 가지고, 세상 무엇보다도 Risk 관리를 중시하는 카드사 사람들과 일을 해야했다. 내가 한해 집행한 마케팅비만 60억인 회사에서 10원을 가지고 쫀쫀하게 싸우는 Retailer 들과 일을 했다. Technology 개발자들과 함께 감성적인 부분을 노리는 모바일 기프트 상품을 만들었다. 모두 “different” culture 속에 “different” people 이었다. 싸우기도 했고, 이해가 안간다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업을 밤에 몰래 공부하고 가기도 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배경을 이해해서 둘다 만족할 있는 솔루션을 만드려 노력했고 두개가 부드럽게 녹아는 접점에서 무언가가 탄생했다.

 

재밌다.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나는 세상이 즐겁다. 세상에는 내가 배우고 느껴야할 것이 너무나 많다.

 what matters most to me가 다른 세상을 이해하는거라면, what I believe most is 그렇게 다른 문화가 만났을 접점에서 발생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다.Steve Jobs once said 그의 정체성은 인문학과 공학의 만남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apple 제품들은 디자인, 음악, 공학이라는 다른 분야들의 교집합에서 그것들을 녹여낸 집합이다두문화가 만났을  양쪽 문화에 가져올 긍정적 변화, change, 새롭게 창조되는 무언가. 나는 그 중간재이고 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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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oment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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