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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1. 17:18 diary

1. 획일화된 사회와 성형 붐


가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까칠하게 걸리던 게 강남역 가는 버스를 지배하던 성형외과 광고였다. "성형했다. 대기업에 취직했다." "성형외과는 정말 조심해서 골라야해요. 여자의 미래가 달려있으니깐요" 라고 30분 내내 나오는 라디오 광고에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 본 이 만화가 떠올랐다. 


'정답사회'

http://kr.news.yahoo.com/service/cartoon/shellview2.htm?linkid=series_cartoon&sidx=13577&widx=41&page=1&seq=0&wdate=20080521&wtitle=%C1%B6%C0%CC%B6%F3%C0%CC%B5%E5



한국사회는 전반적으로 High Standard 를 가진 사회이다. 공부도 이왕할거면 잘해야하고, 스포츠도 이왕할거면 올림픽 금메달 따게 열심히하고, 몸매관리 열풍도 사실 식이조절과 운동에 기반한 건강을 지향하는 사회다. 전국민 비만/과체중에 시달리는 미국보다 훨씬 '나은'국가다. '성공하는' 유대인과 비슷한 국민성이다. 전세계 유래없는 한국의 경제발전은 여러요인 중에서도 그 High Standard 문화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성형 그 자체도 나는 사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4년전에 라식 수술을 하고 나의 몸은 얼마나 기계에 불과한가를 절절히 깨달았다. 나의 자아 정체성은 나의 뇌가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몸이 그 자아와 다른 것을 '의식적으로' 보정하는 것이 그렇게 큰 일일까. 눈의 렌즈에 레이저 10번 정도 슥삭슥삭 왔다갔다 해주면 카메라 기기의 성능이 향상되듯이 내 몸의 기계적 능력이 향상된다. '주어진' 외모를  '내 의지에 맞게' 수정하는 것은 어쩌면 21세기의 새로운 모던혁명이다. 내가 나를 1부터 100까지 컨트롤한다.



그러나, 지금의 성형붐은 그러한 자아발현이 아니라 개개인의 자아를 죽이는 사회적 압박이 가득하다. 

이 나이가 되면 취직해야되는데, 그 취직자리에는 일종의 랭킹이 있다. 공기업/대기업 1등, 그 안에서도 A 기업 B기업 주르륵 줄을 세우고, (우리때는 은행/정유업계가 1위였다) 그다음 중소기업 주르륵 그다음 머, 그걸 못하는 사람은 성형을 통해서라도 '예뻐져야' 그 획일화된 사회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Before-After 사진도 난 참 보기 싫었다. 다른 방식으로 매력있던 사람들이 After 사진에서는 어떻게 다 똑같아졌다. 외꺼풀의 큰눈이 예뻤는데, 외꺼풀에 찢어진눈이 매력 넘쳤는데, 동그란 코가 귀여웠는데, 압구정/청담동에 가면 똑같은 인형들이 비슷한 옷과 비슷한 헤어스타일과 비슷한 메이크업과 비슷한 가방을 들고 앉아있다. 정답처럼.


숨이 막힌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니가 몇살이였지?" 라는 질문을 하루에 서너번 정도 받았다. 그럼 결혼준비해야겠네~ 아직 어리네 머~ 사람마다 그 후속대화는 달랐지만 첫 질문 몇번엔 내 나이가 생각이 안나 당황하며 손가락을 셌다. 그러고보니 미국에 가기전엔 "내나이가 몇이고 2년 공부하면 몇살인데 갔다와서 결혼할 수 있겠지? "라는 고민을 많이 얘기했던 것 같다. 가서는 잊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결혼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면 하는 거지, 스물 여덟에 사람을 만나야 일이년 연애하고 서른전 아직 예쁠 때 결혼할 수 있다는 '공식'은 까맣게 잊고있었다. 간만에 내가 인생의 트랙에서 해야할 일을 안하고 있다는 압박이 닥쳐와서 생경했다. 





2. Start up culture in Korea


사실 굉장히 궁금했다. 한국에서 벤쳐할 생각은 안하고 있었지만, 창업문화가 한국의 대기업 주도 경제모델의 폐해를 극복할 방안일 지 모르겠다고 생각했기에 벤쳐문화 육성은 재밌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기여한다면 창업보다는 정부 정책 변경같은거에 오히려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사실은 매크로적 관점에서 한국 스타트업씬이 이슈는 무엇인가, VC의 규모나 최근 경향, Exit Strategy 가 궁금했다. 그래서 주위에 요즘 스타트업 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는데, 아씨 나도 됐고 빨리 더 도전을 해야되는 건가 뽐뿌만 잔뜩들렸다. 

일해야할지, 해봐야알지, 말만 평생하는 애들은 배우는게 없어. 라는 데는 너무 동의하기에 똑똑한 창업가 몇과 얘기하면서 아 저렇게 푹 빠져서 달리면 재밌겠다 보람있겠다 정말 많이 배우겠다 하고 부러웠다. 사실 자신 없어서 못하는 거 아니에요? 라는 말에 자극 당한 것도 있고.. (특히 완전 똑부러지는 동호군 매우 inspiring 했습니다 감사) 

내가 entrepreneurial 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나는 맨땅에 헤딩하며 밀고 나가는 성격은 못되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가시적으로 내가 해야할 일이 보일때 신나서 일벌이는 스타일이지 무에서 유를 이루는 데서 자극 받지는 않는다. 빙빙도는 회의들이 지겹다. 지금 당장 일할 수 있는게 좋다. 그래서 프로덕트가 잡힌 스타트업에 조인하거나, 조금 큰 기업에서 내 사업 하나 맡아 달리는게 훨씬 신난다. 내가 존중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것도 사실은 굉장히 어려운 task다. 그래도, 한번 해볼까. 졸업하고 1년정도는. 더 늙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은 미루지 말자라는게 삶의 모토다. 여름에 좀 심각하게 길을 찾아볼것. 



3. Where do I really want to live? 사람, 사람, 사람들.


한국이 사회적 압박이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사실, 여전히, 한국의 회사원들은 지쳐보이고 결혼해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나는 사실 별로 안 부럽다. -_- 그들은 행복해보이지 않다는게아니라, 내가 저런것(안정된 가정)으로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았다. 하고 싶은거 다하고, 여행다니고 잘웃고 신나게 술쳐먹고 실수하고 웃고 춤추는 지금 나는 행복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정말 인텐시브하게 2주동안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다 여기에 있는데 멀리가서 살기가 싫다. 한번씩 꼭 안아주고 싶은데, 나누고 싶은데. 몇십년전 나부터 꾸준히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들, 내가 늘하는 패턴의 멘붕을 보이면 들어주는 척하면서 귓등으로 흘려버리는ㅋ 편안한 친구들, 옛날 남자친구 얘기를 하며 피토하면 딱하면 딱 알아들어주는 친구들, 컴플렉스나 치부를 서로 토닥여 주는 사람들, 늙어서일까 짠하게 나를 바라보는 엄마아빠 다 여기있는데, 아무리 아닌척해도 이곳은 내가 자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크고 작은 애착이 가득한 곳인데, 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있고 싶다. 


'내게 필요한 사람과 친해져 필요한 것을 끌어내는 능력'이 MBA의 네트워킹 단어 정의인데 나는 사실 네트워킹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챙긴다. 그리고 인생 실패한 사람들과의 술 마시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그래도 인간관계에 굉장히 집착하며 힘과 실망을 얻는 나이기에, 미국에서의 인간관계보다 훨씬 오래되고 끈끈한 이곳이 좋았다. 한국에 돌아오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주위에서 살고 싶기 때문일거다, 라고 중얼거렸다.




4. 가족


2주도 안되는 짧은 일정중에 그래도 가족들과 데이트는 다한게 기쁘다. 엄마, 동생, 언니 거의 하루씩 바쳐서 천천히 쇼핑하고, 영화보고, 새집 놀러가서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게 참 좋았다. 아빠와 결국 데이트를 못한 건 조금 아쉬움. 

특히 7살 어린 동생과의 대화는 늘 나를 뒤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안보였겠지만, 사실은 지나가는 말들이 너에게 영향을 끼칠까봐 책임감을 느끼고 두세번씩 곰씹어보고 말하고 있어. 결국 하고 싶던 잔소리는 하나였다. 인생을 즐기라고. 지금 인생을 즐기지 못하면 내일은 즐겁겠지 라고 말하는사람은 평생 즐기지 못해. 대학교 1-2학년부터 스펙 준비를 하지는마. 가능한 길을 탐색해보고, 폭넓게 사람들을 만나고, 폭넓게 읽고, 여행도 많이 하고, 평생 가져갈 취미 - 기타든 노래든 운동이든 하나둘은 만들라고. 열심히 놀아라. 니가 달려야할 인생은 앞으로 50년이 넘는데, 지금부터 일적으로 달리면 그냥 너는 평생 주위 못보고 달려대는 사람이 되는거야. 커리어 고민하고 열심히 공부하는거 다 좋은데 그 못지 않게 균형잡힌 삶을 가져가라. (영어빼고. 영어 공부는 일단 무조건 해놔.) 커리어 선택은 성공가능성보다 니가 좋아하는 것을 해. 잘나가는 인더스트리가 멀까, 잘나가는 직업은 멀까, 그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뀌어. 언니떄는 건축학과가 잘 나갔고 나때는 의대/한의대가 잘나갔는데 그게 시대가 변하면서 언제까지 hot 한거는 아니더라고. Invest Bank 같은 것도 요즘 흐름일뿐이고. 그냥 좋아하는 걸해 그래야 꿋꿋히 즐겁게 할 수 있어. 니가 좋아하는 게 먼지 모르겠다면 지금은 그걸 찾는 시간이야. 좋아하는 것 하면서 놀아. 사람들 폭넓게 만나면서 니가 누구처럼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그게 너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줄거다. 그니까 해야되는 일 하지말고 하고 싶은일 좀 해. 음.

사실 아버지가 동생과의 데이트 전에 한마디 했다. "나는 내나름대로 조언해줬지만, 30년전 내가 갔던 길에 기반해서 그아이의 커리어 고민에 대답하기가 어렵더라. 이게 맞는 말일까 조심스러웠다. 가까운 세대에 있는 너가 훨씬 커리어 그림을 잘 그려줄 수 있을거야. 그러니까 쉽게 막 말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조언해줘." 아빠말은 10년후에 어떤 산업이 잘 나갈지 모르겠다는 거였을 거다. 고시를 봐라, 교수가 되라, 같은 부모님 세대의 '정답'보다 요즘의 정답인 뱅크나 컨설팅은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니 알려주라는 얘기였을거다. 그러나 나는 됐고 야 놀아라. 무슨 대학교 일학년이 취업스터디냐 미쳤냐 여행하고, 기타치고, 여기저기 만나라 라는 얘기만 하고 있다. 엄마아빠가 내가 조언하는 걸 보면 기절했겠지만, 알아서 지할일 잘하는 똑똑한 동생을 가진 누나의 사치였다. 



posted by moment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