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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2. 22:31 카테고리 없음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일이 있어 펜을 들었다.


너야 신나게 까불며 떠드는 내 모습만 보았겠지만 사실 늘 이런 건 아니고 너 덕분이고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나 원래 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원래는 참하고 (에헴!) 차갑고 무심한 사람인데'- 까지 쓰고 흠 이건 아닌데. 고민에 빠졌다. 차분하고 참한 사람이라고 우기는 거야 농담이지만, 원래 차가운 사람은 아닌데. 원래 무심한 사람은 아닌데. 근데 지난 몇년은 정말 까칠하고 무심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 원래 까칠하고 예민한데 그런 줄 몰랐지- ' 라니 원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편지를 고쳐썼다. 요즘엔 좋아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신나서 까불대며 행복해하는 나로 돌아왔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줘서 고마워. 


그 친구만 나를 돌아오게 한 건 아닌 건 알고 있다. 일에서 여유를 찾은게 가장 크고 (여전히 일요일 밤이 되면 스트레스 받지만), 단단하게 받쳐주는 내 사람들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깔깔댈 수 있고, 자존감이 돌아왔고 회사 밖의 삶에서 발란스를 찾으면서 주변 사람을 챙길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힘들고 웃고 하는 표정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는 4년을 끌어온 연애에 이별을 고할때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물론 마음이야 엄청 아팠고, 잘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했고, 미련을 (아직도) 떼지 못했지만 그게 자기파괴의 길로 가거나 무너지진 않았다. 이게 말이 될 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게 슬퍼했다. 


나이가 들면 30대가 되면 지치고 까칠하고 닳고 닳은 초라한 인간이 되는건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나' 가 되는 줄 알았는데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아니었다. 몇년만에 돌아왔다. 책도 읽고 인텔렉츄얼한 토론이 즐겁다. 한동안은 어려운 대화만 나오면 초라한 내가 숨고 싶고 수동적으로 티비만 소모했는데, 이제는 지적 자극이 다시 즐겁다.


아 행복하다, 라고 소리내어 말한게 초여름이었나. 오늘은 느지막히 일어나 운동하고 샤워하고 피아노를 한시간 치고 느긋하게 드립커피를 내리면서 맛있는 브런치를 기대하는데 좋은 일요일 오전이네, 싶었다. 느긋하고 행복하다. 


'젊은 날은 다 갔어' 라고 말하는 대신에 '아 삼십대 초반에 왜 그렇게 힘들었나 몰라'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휘-유. 정말 다행. 앞으로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따뜻하고, 지적이며 인스파이어링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내일은 더 건강하고 더 따뜻하고 더 멋진 내가 되는 걸로. 

posted by moment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