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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6. 10:49 카테고리 없음

한달 늦게 쓰는 생일 일기. 


베를린은 굉장히 좋았다. 춥고, 피곤하고, 얼굴은 다 터버려서 갔다와서 일주일간 고생하고, 어느 역사적인 생일파티처럼 신나게 놀아댄 건 아니었지만 요즈음의 삶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달까. 


서유럽은 엄청 돌아다녔지만 베를린은 처음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친구들이 있다는 독일 역사 박물관을 가서 역사순으로 시대를 밟아갔다. 20세기까지 머 별거 없자나라며 슥슥 지나가다가, 최근 100년에 엄청나게 매료되서 완전 집중해서 보았다. 백년전 경제 불황에서 사회문제가 커지면서 조금씩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 사상이 퍼져나가기 시작하고, 인종을 배척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고, 나찌의 캐피탈이 되고, 어느 순간 조직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색출해 학살하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되어있다. 르완다 호텔에서도 말을 잃었고 캄보디아 학살 현장에서도 숙연해졌지만 나찌는 엘리트들이 조직적으로 학살의 현장을 만들었다는 데서 다르게 두렵다. 캄보디아는 평민들이 들고 일어나 엘리트에게 분노를 표출했다는 데서 끔찍하지만 (안경을 쓰고 있거나 손에 굳은 살이 없으면 학살했다고) 나찌는 인간을 움직이는 법을 아는 정치인이 효과적으로 군중을 조종했다는 데서 두렵다. (나찌는 민주사회에서 선거로 당선된 정권이다)  처음에는 이거 최근의 트럼프 사태와 비슷하자나, 라고 투덜대다가 이건 비교할 수 없이 심하다는 결론.

권위주위와 계급을 강조하는 묵직하고 압도적인 건축 양식. 그리고 냉전시대로 넘어간다. 개성이라고는 없는 무뚝뚝하고 추레한 회색의 공산시대 건물. 정치 분쟁이 끊이지 않고 불안한 사회에서 계속 서베를린으로 도망쳐 오는 사람들. 억눌린 사회에서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흔적이 사방에 남아있다. 강렬한 벽화, 꿈틀대는 그림들. 이런 사회에서 예술은 더욱 꽃핀다. 테크노 음악이 태어나고 그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시 브란덴부르크 문이 열리고, 서베를린의 부유한 문화가 동베를린에도 스며들고. 흑백필름이 보다보면 북한 생각을 안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베를린은 유럽에서 제일 열린 이민 정책을 피는 '실리콘밸리'가 되었다. 개발자들과의 미팅에서 독일인은 거의 없고 러시아/동유럽계 개발자들이 대부분. 베를린에서 꼭 먹어야할 음식은 터키인의 영향을 받은 커리소시지. 주말에는 큰 아시안 마켓도 열린다. 시리아에서도 이민자를 가장 많이 받았다. 은근히 배타적인 유럽 사회에서 이민자들이 넘어올 수 있는 사회가 되었고, 그렇게 테크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다. 


근교도시, '북쪽의 피렌체'였다는 드레스덴에 갔는데 거기서도 데모 중. 시리아의 난민들을 보호하자는 시위와 시칠리아에서 넘어오려던 난민들을 받지않아 수백명 보트피플이 바다에서 죽어간 사건을 추모하는 전시회가 광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에는 극우시위가 열릴 예정이라고.  


독일의 박물관을 돌아다니면서 독일인이 좋아졌다. 독일인이 저지른 악행은 어느 인류사보다도 잘 알려져있는데, 이는 독일인이 자신들의 잘못을 명료하게 정리해논 데서 시작한다. (물론 유태인들의 정치적/재정적 후원도 든든하다) 독일의 기초교육 12년을 받은 사람이라면 유태인수용소 학살의 현장을 세번 이상 방문하게 되어있다는데, 역사를 이토록 정직하게 뒤돌아보고 아주 명확한 언어로 몇명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학살당했는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재현해놓은 국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한국이 왜 자랑스러운 나라인가 가르치고, 일본 군인이 한국에서 저지른 만행을 가르치지만 배트남 전쟁에 파견된 우리 군인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는 가르치지 않지 않나. 역사적으로 항상 옳은 일만 해온 민족은 어디에도 없다. 파쇼 사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가르치지 않으면 또 같은 실수를 할 가능성도 높다. 내 잘못을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후대에 가르치는 사회는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잘 정리해놓아 건축이나 예술에서도 두려움과 격동하는 감정이 느껴지는데, 회사에서 일 관련 메세지는 끊임없이 쏟아져서 대답하다 말고 아 나는 이런 사소한 일에 왜 스트레스 받아 쩔쩔대는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굉장히 좋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 공부하고 싶은 곳에서 공부했고 일하고 싶은데서 일하고 있고 이 먼 곳에 비지니스 클래스를 타고 와 별 다섯개 짜리 호텔에 호화롭게 묵고 있다. 게이의 결혼이 합법화되고, 이민 정책에 동의하지 않아 시위하는 것이 허락되고, 무능력한 대통령을 쫓아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감사하고 행복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거 가지고 스트레스 받아 안절부절이라니 안네 프랑크에게 얼굴 들 면목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서 아 내가 선택한게 잘한 건지 모르겠어서 스트레스라니, 이 얼마나 First world problem 인가. 그러니 이보다 열배 스무배 백배는 행복합시다. 


생일은 행복해하면서 조용히 돌아다녔다. 성격이 예전보다 내성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워킹 투어를 해서 그룹이랑 있었고 친구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생일이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굳이 친구를 만들지도 않았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보고 느끼고읽고 걸어다니면서 좋았다. 드레스덴에서 엄청 추운데 따뜻하고 달달한 글루스바인을 호호 불어가면서 마시면서  저런 소비에트 시대 건물에 안살아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추워지면 책방가서 책 사진 뒤적거리고 예전 필름보고, 가게들 기웃거리고, 유서깊은 백화점에 들러 내게 선물 하나 사주고, 고르메 음식 모아놓은 푸드 코트에 가서 맥주한잔에 소세지 먹고, 아 취하고 기분좋다, 조금더 안주거리 사와 호텔에 와서 쏟아지는 생일 메시지에 대답하다 잠들었다. 예전에는 생일이면 친구들에 둘러싸여서 사랑받고 있구나 헤헤 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는데, 하루에 케익 커팅 서너번 하고 누가 미역국도 끓여주고 그러면 행복해했는데, 이렇게 아무 날도 아닌 척 하는게 이제는 더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지낸 서른두살 생일은 나답지 않지만 이제는 나다운 것 같기도 하다.




+ 사실 H가 생일 전주에 취직겸 못본지 오래된 겸 이래저래 샌프란에 놀러왔었는데 너무 좋았다. 생일 앞뒤에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거기서도 메세지와 전화는 했으므로 괜찮았던 건지도. 예전에는 막 물리적으로 옆에 있어줘야햇는데, 나이드니 다들 바빠서 문자 전화만 해줘도 충분히 행복하다. 또 굳이 전화해주지 않아도 그렇게 재차 확인해주지 않아도 내 사람들이라는 걸 안다. 

posted by moment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