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7.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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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살짝 의기소침해 있다. 페이스북의 팀선택은 정말 이게 가능하나 싶을만큼 놀랄만큼 열려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있는데 팀에 자리가 없거나 그런 보직이 없다면 내가 나의 비젼을 팔면 된다. 그럼 팀을 만들어준다. 입사한 애들의 20%는 그렇게 팀을 만들어 갔다. 내가 가고 싶은 팀에 무작정 가서 왜 좋아하는지 멀 기여할 수 있는지 설득력있게 말하면 그쪽의 매니저도 내가 맘에 들면 어떻게든 내가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 멘토들은 그걸 도와주려 든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음 그럼 그팀에 누구랑 이야기해봐 라고 찾아준다. 그 도움을 받아, 나는 일을 벌이기만 하면 된다. 일벌이기 좋은 훌륭한 문화다.
대신 가만히 있는데 주어지는 일은 없다. 팀도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나가서 찾아야하는 거다. 훌륭한 문화인데, 똑똑하게 시키는 일 해온 많은 한국 학생들은 어쩔 줄 몰라할 거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닌데, 내게 진짜 문제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다고 우기면 되는 게 아니라 매니저든 나랑 같이 일할 사람이든 그들의 환심을 사야한다는 거다. 공식적으로는 인터뷰가 아니나 사실상 매일매일 인터뷰의 연장선. 보는 사람마다 잘 보이고 싶고, 잘 보여야한다는 압박이 있다. 처음 이야기한 팀에 그냥 조용히 갈라 그랬는데 그 팀에서 결국 거절당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인터뷰 때 너 정도면 괜찮네, 라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내가 너무 좋아서 나한테 훌떡 반하는 사람은 잘 없는데. 거기다가 백인 남자랑 업무 베프였던 적도 없고. 같이 일하기 불만은 없어도 좋아 죽었던 적도 별로 없다. 근데 이건 누가 나랑 일하고 싶어 확 땡겨줘야하는 시스템.
영어로 문서를 써야한다는 것에 쫄아서 일 잘할 자신이 없는데, 솔직히 자신감이 없는데 자신있는 척하니 가시방석이다. 조직이 정해지고 팀으로 일하게 되면 조용하게 모르는 것 인정하면서도 밀어일 거는 자신있게 강단있게 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첨보는 사람에게 나 처럼 잘난 사람 없으니 나에게 일을 다오! 라고 하기는 역시 성격에 안 맞는다.
오늘은 한국에서 같이 일하던 l 님을 만나 이야기 하는데 막연히 미국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보고(아닐 수도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잔소리 섞인 조언을 한 것 같아 뒤돌아 후회된다. 나도 오기 전엔 아무것도 개뿔 몰랐는데, 그 무렵의 나에게 손내밀기는 커녕 잘난척한 거는 아닐까.
그러고보면 꾸준히 한단계씩 올라왔다. SKT 에서 MIT MBA 로, MBA에서 징가로, 징가에서 페이스북으로. 10년전 내게 내가 페이스북 본사에서 일할 것이라 했으면 나는 입을 떡 벌렸을 거다. 아니 5년전, 3년전 내게만 말했어도 깜짝 놀랄거다. 그렇게 한단계씩 올라올 때마다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 받으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늘었다.
SKT 연수 때 백명 넘는 소셜한 사람들 사이에서 움츠러들었다. 연수원에서 술을 퍼마실 때 나도 모두가 좋아하고 어울리고 싶고 유머도 잘 던지는 소탈한 사람이엇으면, 아니면 엄청 예쁘기라도 해서 다들 먼저 다가와줬으면이라고 뒤에서 짐짓 쫄아있었다. 소심한 여고생처럼.
MBA지원할 때는 나 따위가 될까 싶어 아주 쫄아있었다. 시험점수가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한번씩 불안감에 휩싸여 어쩔줄 몰라했다. K 오빠 페이스북을 보다가, 아 그 때 이 오빠가 "희상아 긍정의 힘!" 이라고 씩씩하게 외쳐주는 것에 괜히 마음이 든든하게 차올랐었지 그래서 참 고마워했었지 라고 기억이 났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당연히 내가 할 수 있었던 것들에 참 쫄아있었다.
MBA 와서도 소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터네셔널과는 그래도 친해질 수 있었는데, 끝까지 완전 미국애들하고는 친해지지 않았다.
징가 와서는 몰래 근무를 더 했다 영어를 너무 못해서. 지금 페북에서 영문서 쓰는 것에 쫄아있는데 사실 징가나 델 때는 영어 이메일도 써본적도 없었다. 멍청한 소리를 하고 파워포인트에 문법 다 틀려 있는데 베시시 웃는 아시안 여자애가 된게 자존심 상해서 어디가서 코박고 죽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나, 베시시라도 웃어야지 멍청한 소리하고 얼굴까지 찌푸리는 멍청이가 될 수도 없고.
지금은 멋있고 우와! 소리 나는 PM이고픈데 별 인상 못주는 PM이라 혼자 스트레스를 주며 의기소침한 거다. Box 의 First Employee 고, 마이크로소프트 팀장이었고, 페이스북에 스타트업을 매각했고, 넥스트도어 VP였고 너무 대단한 사람들을 보며 (아니 그런데 너 여기에 고작 PM으로 있는 거야 디렉터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화려하지 못하다는 것에 혼자 짐짓 의기소침해지는 거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도 내가 참 어이가 없네.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정말 많이 발전했는데 올챙이적 일은 까먹고 참 욕심도 많다. 일기쓰고 보니 의기소침한게 가셨다. 편하게 생각하자. 내일은 더 나은 내가 더 발전한 내가 되어있겠지.
근거없는 자신감이야 말로 창업자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나는 그게 없어서 창업자는 진작에 포기. 나는 맨날 왜 이렇게 쫄까? 사실 잘 하는데. 쫄지만 말자. 나 정말 기특한데.